어느 아침, 공장 마당에 나갔더니 콘크리트 바닥 위로 기다란 나무들이 보였습니다. 모래사장도 아닌 공장 야외 바닥이지만, 어딘가 바닷가 특유의 송진 향이 감도는 기분입니다.
얼마 전 고객이 카페에 쓸 나무를 찾으러 방문했습니다. 한옥 느낌으로 인테리어를 구상 중이라는 그를 해송 마루가 시공된 회사 내 목재문화원 2층으로 안내했습니다. 잠시 둘러본 후 그 자리에서 수종을 확정하고 주문까지 마쳤습니다.
다음 날, 목재숙성창고 깊은 곳에 보관되어 있던 해송 판재들을 꺼내 마당에 펼쳐놓았습니다. 평판제재(flatsawn)된 판재들은 아직 외피가 붙어 있어 거칠었고, 표면의 송진은 이미 굳어 있는 상태였습니다. 10년도 넘게 건조된 ‘숙성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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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재문화원 2층 바닥재로 사용된 해송 (사진출처 : 유림목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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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본래 이름은 해송(海松), 우리말로 곰솔입니다. 여름마다 우리가 그늘에서 쉬었던 바닷가 소나무입니다.
규격에 맞는 판재를 골라내려 길게 펼쳐 놓으니 소나무 군락지 사이로 불어드는 바닷바람이 느껴지는 듯합니다. 판재 하나하나마다 50년, 70년, 때로는 백 년 넘게 파도와 바람을 온몸으로 받아낸 해안림의 기억이 뒤틀린 결마다 지문처럼 남아 있습니다.
‘소나무는 송진 때문에 건축 자재로 쓰기 까다롭다’는 것이 세간의 오래된 통념입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이 나무를 다루다 보면 다른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이 말은 절반만 맞습니다. 문제는 송진이 아니라, 송진을 다루는 방법을 몰랐다는 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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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년 동안 숙성건조된 해송 판재 (사진출처 : 유림목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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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송을 다루다 보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이 이름을 바로잡는 일입니다. 우리는 흔히 산에 있는 것도, 바다에 있는 것도 모두 “소나무”라고 부릅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둘 다 소나무속(Pinus)의 한 식구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둘은 전혀 다른 세계를 살아온 나무들입니다.
한국의 산을 지키는 소나무가 ‘육송(적송)’입니다. 껍질이 붉고 잎이 부드러워 마치 붉은 비단옷을 입은 선비 같습니다. 반면 바닷가의 소나무는 ‘해송’ 혹은 ‘곰솔’이라 부릅니다. 껍질이 검고 거북 등처럼 투박하게 갈라져 있어 검은 갑옷을 두른 장군을 연상케 합니다.
향기부터 다릅니다. 육송이 숲 속의 은은한 단내를 풍긴다면, 해송은 바다를 닮아 훨씬 묵직하고 깊은 향을 냅니다. 무엇보다 겨울 산책길에서 이 둘을 구분하는 확실한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겨울눈’입니다.
육송의 겨울눈은 붉지만, 해송의 겨울눈은 은백색입니다. 바닷바람에 서리가 내린 듯 빛나는, 척박한 모래 위에서 스스로를 단련해 온 나무만이 가질 수 있는 표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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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무는 왜 굳이 척박한 바닷가에 뿌리를 내렸을까요?”
해송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기보다, 남들이 살 수 없는 곳을 택했습니다. 바닷바람에 섞인 염분은 대부분의 나무에게 독이지만, 해송에게는 경쟁자를 몰아내는 무기였습니다. 모래땅의 척박함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양분이 부족한 땅에서 천천히 자란 나무는 나이테가 촘촘해지고, 그만큼 단단해집니다.
그리고 이 단단함이 500년 전 조선의 바다를 지키는 힘이 되었습니다. 조선의 바다를 지킨 거북선과 판옥선. 학계에 따르면 당시 군선의 주재료로 가장 널리 쓰인 나무 중 하나가 바로 이 해송과 소나무였습니다.
특히 해송은 습기에 강하고 재질이 단단해, 거친 파도와 적선의 충돌을 견뎌야 하는 배의 외판재로 제격이었습니다. 외판재란 쉽게 말해 배의 껍질입니다.
그래서 조선은 ‘송금(松禁)’이라는 엄격한 법을 만들어 해안가 주요 곰솔림을 함부로 베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지역에 따라 해안 10리에서 30리까지 벌목을 금지했습니다. 해송 없이는 배를 만들 수 없고, 배 없이는 바다를 지킬 수 없다는 절박함이었습니다.
과거에는 나라를 지키던 그 듬직한 나무가 이제는 사람들의 집과 휴식 공간을 지탱하는 기둥과 마루가 되려 합니다. 용도는 바뀌었지만 세월을 버티는 힘만은 변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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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이드벨트샌더 기계로 표면을 곱게 다듬은 해송 판재 (사진출처 : 유림목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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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송을 제재하고 가공하다 보면 기술자들은 종종 혀를 찹니다.
“이 놈의 송진 때문에 톱날을 또 갈아야 하네!”
단순한 엄살이 아닙니다. 현장에서 송진은 ‘녹으면 접착제, 굳으면 사포’가 되는 두 얼굴의 악당입니다.
제재기는 굉음을 울리며 고속으로 회전합니다. 마찰열이 100도를 넘어가면 나무 속 송진이 녹아 톱날에 본드처럼 들러붙습니다. 톱날이 식으면 송진은 돌처럼 딱딱한 알갱이로 변해 다이아몬드 다음으로 단단하다는 초경합금 톱날까지 사포처럼 갈아버리거나 부러뜨립니다.
그래서 우리는 해송을 켤 때 미리 갈아둔 톱날을 충분히 준비해 두고 수시로 톱날에 기름을 먹여가며 달래듯 작업합니다. 하지만 톱날을 망가뜨리는 이 지독한 송진이야말로 사실 해송이 가진 최고의 무기입니다.
나무가 상처를 입었을 때 병균이 침입하지 못하도록 스스로 뿜어내는 천연 방어 물질이 바로 송진이기 때문입니다. 옛사람들이 종기에 붙이던 ‘고약’의 주원료가 송진이었고, 《동의보감》에도 염증을 다스리는 약재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송진의 ‘시간 여행’입니다. 그토록 톱날을 괴롭히던 송진은 공장 마당에서 햇빛과 바람을 맞으며 숙성됩니다. 시간이 흐르면 휘발성 성분은 날아가고, 남은 성분은 ‘로진(Rosin)’이라는 단단한 호박색 고체로 변합니다.
바이올린 연주자가 활에 문지르는 그 노란 덩어리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씹는 껌에도, 바르는 연고에도 이 나무의 눈물이 숨어 있습니다.
결국 송진은 나무가 스스로 몸을 지키기 위해 만든 강력한 ‘천연 방패’이자 유익한 ‘천연 원료’입니다. 잘 건조된 해송 판재는 이제 쉽게 썩지 않는 천연 방부목이 되어 카페에 머무는 사람들에게 은은한 치유의 향기를 선물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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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공을 마친 해송 판재 납품 준비가 한창이다. (사진출처 : 유림목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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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재기로 다듬은 해송 판재가 샌딩기(사포 기계)로 들어갑니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표면의 거친 막이 벗겨지면 비로소 해송의 진짜 얼굴이 드러납니다.
검은 껍질 속에 감춰져 있던 황금빛 속살, 파도처럼 출렁이는 나뭇결, 그리고 그 결 사이사이에 보석처럼 박힌 굳은 송진들. 기계가 지나간 자리에 드러난 그 무늬는 마치 한 폭의 추상화 같습니다.
이제 이 나무들은 트럭에 실려 카페라는 새로운 보금자리로 떠납니다. 1톤 트럭에 가지런히 실린 나무들은 누군가의 마루가 되고, 벽이 되고, 테이블이 되어 다시 일상의 공간을 채울 것입니다.
나무를 실은 트럭이 공장문을 빠져나갑니다. 해송은 바람을 피하는 나무가 아니라 바람을 상대하는 법을 아는 나무입니다. 人(사람)과 木(나무)를 합치면 休(쉴 휴)가 됩니다. 나무는 바람을 견디며 자라고 사람은 그 나무에 기대어 쉽니다.
어느 날 한옥 카페에서 누르스름한 빛깔에 파도치는 결을 가진 나무를 만난다면 손으로 쓸어보시길 바랍니다. 콘크리트 마당에 누워 있던 나무가 바닷바람을 견디던 시간을 품은 채 이제는 당신의 휴식을 지키고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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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켜고, 깎고, 다듬는 건 익숙한데 글은 쓸 때마다 골치 아픈 우드코디BJ입니다.
그래도 나무를 좋아하고, 목재를 좋아하실 여러분과 소통하고 싶어 오늘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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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목재소는 현재 김포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꼭 나무를 찾으러 오시는 것이 아니더라도 괜찮습니다.
언제든지 편하게 방문해 주시면, 저희가 성심껏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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