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지하철에서, 혹은 주말 아침 침대에서 한 번쯤 상상해본 적이 있으신가요? 도시의 소음에서 벗어나 바다가 보이는 언덕이나 숲이 내려다보이는 들판에 작은 집을 짓고 사는 꿈. 한국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가슴 한편에 품고 있을 그 장면 속에는 언제나 비슷한 모양의 집이 등장합니다.
푸른 잔디와 하얀 목재 사이딩, 지붕 밑 조그만 다락방, 현관 앞 흔들의자. 미국 영화와 드라마가 수십 년간 우리 마음속에 심어놓은 미국식 목조주택의 이미지이죠.
우리는 왜 그 집에 끌릴까요? 차가운 회색빛 콘크리트와 달리, 나무는 숨을 쉬고 사람을 품는다는 믿음. 하지만 그 믿음이 태평양을 건너 미국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한 폭의 그림 같은 정원 딸린 주택 뒤에는 우리가 보지 못했던 '또 다른 진실'이 숨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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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북미 목재 산업 시찰 당시 촬영한 목조 주택 조성 현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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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집에 대한 한국적 원형은 한옥으로 볼 수 있습니다. 굵직한 기둥과 보가 무게를 떠받치는 중량 목구조이며, 흙과 바람이 드나들고 나무가 가진 물성과 향기가 그대로 남아 있는 형태입니다. 자연의 재료를 다듬어 원형에 가깝게 쓴다는 점에서, 갓 수확한 생토마토를 그대로 씹어 먹는 것과 비슷합니다. 손이 많이 가고 비용도 들지만, 재료 자체의 건강함이 느껴지는 방식입니다.
반면 미국의 목조주택은 이와 전혀 다른 세계의 산물입니다. 보통 ‘투바이’라고 불리는 구조용 판재를 일정한 간격으로 세우고, 그 위에 합판과 석고보드를 붙입니다. 레고 블록처럼 규격화된 자재를 조립하듯 빠르게 집이 올라가는 방식입니다.
이 구조는 자연에서 유래한 천연재료를 쓰겠다는 목적보다는,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수요에 맞춰 주택을 대량 생산하는 데 최적화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빠르게 지을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그만큼 밀폐성이 높아졌으며, 전통 한옥처럼 자연스럽게 바람이 드나드는 구조는 아닙니다.
바꿔 말하자면, 그것은 생토마토가 아니라 ‘토마토 케첩’에 가깝습니다.
케첩이 나쁘다는 뜻은 아닙니다. 케첩은 가격이 저렴하고 보관이 쉽고 대량 생산이 가능하여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다만 케첩은 생토마토가 아닙니다. 미국의 목조주택이 딱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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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북미 목재 산업 시찰 당시 촬영한 벌목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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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미국은 왜 이런 구조를 선택했을까요?
첫째
나무가 석유만큼 쏟아지는 나라입니다. 미국과 캐나다의 숲은 자연 그대로의 산이 아니라, 계획적으로 심고 기르고 베어내는 거대한 ‘나무 농장’에 가깝습니다. 한국은 나무를 수입해서 쓰지만, 미국은 수출도 하는 임업 강국입니다.
둘째
‘레미콘 90분의 법칙’ 때문입니다. 콘크리트 반죽은 공장에서 출하된 지 90분 안에 붓지 않으면 굳어버려 쓸 수 없습니다. 땅덩이가 좁은 한국은 어디든 배달이 가능하지만, 광활한 미국 땅에서는 레미콘 차가 닿을 수 없는 곳이 태반입니다.
셋째
살인적인 인건비 때문입니다. 미국에서 콘크리트로 집을 지으려면 목조보다 훨씬 비싸며, 숙련된 기술자도 부족합니다. 반면 경량 목구조는 망치와 못만 있으면 비숙련 노동자들도 몇 개월이면 뚝딱 지을 수 있습니다.
넷째
그들에게 집은 평생 사는 곳이 아닙니다. 미국인은 평생 평균 11번 이사를 다닌다고 합니다. 5년 살다 팔고, 또 사고, 또 팝니다. 한국인에게 집이 ‘대를 잇는 자산’이라면, 미국인에게 집은 ‘자동차보다 조금 큰 내구재’에 가깝습니다. 그런 집에 100년 갈 콘크리트를 부을 이유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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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북미 목재 산업 시찰 당시 촬영한 목재 공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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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량 목구조는 로망이 아니라 생존의 선택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집이 건강할까요. 빠르게 짓고, 단단히 밀폐해서 단열하고, 합판으로 막은 그 집 안의 공기는 정말 깨끗할까요. 많은 이들이 나무니까 콘크리트보다 덜 해롭고 사람에게 더 좋을 거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캐나다 작가 앤절라 홉스의 이야기는 이 환상에 균열을 냅니다.
그녀는 브리티시컬럼비아의 한적한 마을에서 오래된 목조주택을 리모델링했습니다. 처음 1년은 괜찮았습니다. 나무 향기가 집안을 채웠고, 창밖으로 숲이 보였습니다.
문제는 2년째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설명하기 힘든 증상들이 이어졌습니다. 두통, 피로감, 가슴 답답함. 의사는 원인을 찾지 못했고 항우울제를 처방했습니다. 하지만 집을 떠나 있을 때는 증상이 사라졌습니다.
결국 그녀는 벽을 뜯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습기를 머금은 구조재 사이로 번식한 곰팡이와 합판·보드에서 배어 나온 화학물질에 갇힌 공기를 마주합니다. 바람길을 잃은 집이, 그 안에 사는 사람을 공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녀는 책을 썼습니다. 『Sick House Survival Guide』. 제목 그대로, 아픈 집에서 살아남는 법에 대한 기록이었습니다.
그녀의 경험은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닙니다. 정작 그녀도, 항우울제를 처방해 준 의사도 자신이 겪는 증상이 집 때문이라는 걸 알지 못했다는 점이 더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무렵, 건축자재에서 VOCs(휘발성 유기화합물)가 대량 방출된다는 사실은 이미 업계에 알려져 있었습니다.
소비자는 몰랐을지 몰라도, 공급자까지 몰랐을까요. 이 질문은 태평양을 건너 한국의 현장에서도 똑같이 반복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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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ck House Survival Guide』 앤절라 홉스(Angela Hobbs) / (2003) (사진출처 : amaz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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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인천 앞바다의 한 섬을 걷다, 오래된 보행 데크 앞에서 걸음을 멈춘 적이 있습니다. 멀리서 보면 그저 낡아 보이는 데크였습니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 들여다보는 순간, “이 데크가 왜 이렇게 일찍 무너졌는지” 모든 이유가 한 번에 보였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말합니다. “나무가 썩어서 무너진 거지.”
하지만 진짜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데크 표면의 나무는 아직 제 모양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색이 바래고 표면이 갈라졌을 뿐, 나무 자체는 버텨내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 밑이었습니다.
철골 구조물이 바닷바람에 녹아 붉게 부풀어 있었고, 나무를 고정하던 피스(나사)들은 이미 녹물로 일그러져 돌처럼 굳어 있었습니다. 해안이라면 당연히 스테인리스나 용융아연도금 강재를 써야 합니다. 하지만 이 현장은 몇 푼 아끼려는 듯, 얇게 방청 페인트만 바른 일반 철재를 쓴 것으로 보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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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는 너무나 단순합니다. 염분은 철을 갉아먹고, 철이 무너지면 아무리 비싸고 좋은 목재 데크라도 함께 무너집니다. 목재가 아니라, 그 목재를 받쳐줘야 할 사람의 선택이 먼저 무너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현장은 그 섬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며칠 뒤, 마포의 한 공원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보았습니다. 주말이라 공사 인부도 없어, 저는 천천히 시공 중인 데크 구조를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재료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모양새를 갖춰가는 강재 구조물, 가지런히 나열된 열대 하드우드 데크재. 자재만 놓고 보면 별 문제는 없어 보였습니다. “이번엔 제대로 하려나” 싶은 마음으로 둘러보던 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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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발밑을 보는 순간, 깊은 한숨이 나왔습니다.
지면과 데크 하부 사이가 5~8cm. 성인 남자 주먹 하나 들어갈까 말까 한 높이였습니다. 통풍이 될 리 없는 구조였습니다. 어떤 구간은 구조재가 흙에 닿기 직전이었고, 그 아래에는 자갈 배수층도, 제초 매트도 없었습니다. 비가 오면 토양에서 습기가 올라오고, 그 습기는 빠져나갈 길 없이 갇힐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비싼 목재를 깔아도, 아무리 도금 강재를 써도 나무 밑에 ‘바람길’이 없다면 그곳은 곧 습기로 가득한 작은 지하실이 됩니다. 3년 안에 뒷면이 까맣게 썩어 교체 공사를 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저는 현장에서 이런 장면을 셀 수 없이 봐왔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진실만은 확신합니다.
나무는 비를 맞아서 썩지 않습니다. 젖은 채로, 마르지 못해서 썩습니다. 좋은 데크의 첫 번째 조건은 좋은 목재가 아니라, 잘 마를 수 있는 구조입니다.
나무는 정직한 재료입니다. 습하면 썩고, 마르면 삽니다. 수종이 달라도, 가격이 달라도 변하지 않는 자연의 법칙입니다.
하지만 이 간단한 원리가 예산 절감, 공사 기간 단축, 혹은 그저 ‘몰라서’라는 이유로 너무 쉽게 무시됩니다. 철재 몇 만 원을 아끼다가 수억짜리 산책로가 내려앉고, 바람길 10cm를 확보하지 않아 3년 뒤 전체 교체 공사에 들어가는 식입니다.
나무가 썩는 게 아닙니다. 사람이 나무를 썩게 만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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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반부터 회사로 들어오는 문의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아이 방 책상과 서랍장을 원목으로 만들려고요. 아토피가 심해서 원목 가구로 바꿔볼까 해서요.”
“새 건물이라 페인트 냄새가 너무 심해서, 사무실 인테리어에 쓸 만한 나무 좀 추천해 주세요.”
그 무렵, 한국 사회는 세 가지 변화가 같은 시기에 겹쳤습니다. 하나는 아토피 아이들의 급증이었고, 다른 하나는 급격히 변한 식습관 문제였고, 또 하나는 새집증후군이 사회적 의제로 떠오른 일이었습니다.
세 현상이 같은 시기에 나타난 건 우연이었을까요. 아파트는 점점 밀폐형으로 진화했고, 실내 생활 시간은 늘어났습니다. 식탁에는 패스트푸드와 가공식품이 늘었고, 벽 속에는 접착제와 단열재가 들어갔습니다.
정확한 인과관계는 아직 불분명합니다. 하지만 ‘환경성 질환’이라는 담론이 이 시기에 형성된 건 우연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환경성 질환에 대한 담론은 기존 콘크리트 주거 환경에 대한 불신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그 대안으로, 사람들은 자연에서 유래한 천연 재료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가공식품이 문제니까 유기농으로 먹자.”
“콘크리트가 문제니까 친환경 자재를 쓰자.”
하지만 앞서 본 것처럼, 나무 집이라고 해서 자동으로 안전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미국의 앤절라 홉스가 경험한 것처럼, 잘못 지은 나무 집은 오히려 더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재료 자체의 등급과 품질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재료를 얼마나 이해하고 쓰느냐입니다.
저는 상담할 때마다 손님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비싼 나무가 좋은 나무냐는 질문을 많이 하시는데, 정작 중요한 건 나무를 어떻게 쓰느냐입니다. 100점을 원하시면 50점은 ‘자재’, 나머지 50점은 ‘시공’을 꼼꼼히 챙기셔야 합니다.”
좋은 음식을 먹어도 소화가 안 되면 독이 되듯, 좋은 자재도 바르게 쓰지 못하면 독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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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데크를 보고, 마포 현장을 보고 나서 이제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미국 드라마 속 그 집은 정말 우리가 꿈꾸는 치유의 공간일까요?
그 집을 지탱하는 구조와 현실을 들여다보면, 그곳 역시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미국은 나무가 썩는 문제와 싸우고, 한국은 콘크리트가 갈라지는 문제와 싸웁니다. 재료는 달라도, 자본의 논리가 주택의 품질을 결정하는 구조는 똑같습니다.
우리가 어떤 집에 살지의 문제는 어쩌면 취향이 아니라 현실일지 모릅니다. 미국인은 아파트에 살고 싶어도 그렇게 짓는 인프라가 없고, 한국인은 제대로 된 목조주택을 짓고 싶어도 시공 생태계와 유지관리 비용이 받쳐주지 못합니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환상을 좇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처한 환경 속에서 최적의 선택을 찾는 일입니다.
목조주택을 포기하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제대로 지으면 콘크리트보다 나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 ‘제대로’가 무엇인지 아는 것이고, 그것을 시공사에게 요구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비싼 자재를 쓰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내가 필요로 하는 물건은 다이소에도 있는 법입니다.
자재는 말이 없습니다. 아직은 공급자의 정직함보다 소비자의 깐깐함이 더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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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심슨가족 집, 레고버젼 ( 사진출처 : The Brick Fan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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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켜고, 깎고, 다듬는 건 익숙한데 글은 쓸 때마다 골치 아픈 우드코디BJ입니다.
그래도 나무를 좋아하고, 목재를 좋아하실 여러분과 소통하고 싶어 오늘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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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목재소는 현재 김포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꼭 나무를 찾으러 오시는 것이 아니더라도 괜찮습니다.
언제든지 편하게 방문해 주시면, 저희가 성심껏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의 방문을 언제나 환영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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