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집인데 마루판 사이가 벌어지고 문이 잘 맞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곧바로 ‘불량 목재’를 탓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단단하고 값비싼 나무라도, 새로운 환경에 맞춰 숨 고르는 시간을 주지 않으면 결국 뒤틀림과 갈라짐은 피할 수 없습니다. 문제는 목재의 품질이 아니라, 기다림의 부재였습니다.
지난 편에서 외벽의 숨길을 살폈다면, 이번 편은 나무 자체의 숨 고르기를 다룹니다. 목재 순응(Wood Acclimation)은 바로 그 시간을 주는 과정입니다. 나무가 집 안의 공기와 습도, 기후에 적응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숨 고르기입니다.
|
|
|
▲ 원목마루 하자 사례. 온습도 관리 미흡도 품질 불량의 주요 원인 중 하나다.
|
|
|
국내 한 신축 아파트에서는 입주 몇 달 만에 마루판이 갈라지고 들뜨는 하자가 속출했습니다. 바닥 시멘트에 갇혀 있던 수분이 마루판을 적시며 불균형을 만들었습니다. 목재 자체의 불량이 아니라, 순응 과정의 부재가 원인이었습니다.
해외에서도 같은 실수가 반복되었습니다. 시공 직후에는 아무 문제 없던 원목 마루가, 계절이 바뀌는 순간 갈라지고 들떴습니다. 제조사와 시공사, 소비자는 서로를 탓했습니다. 그 사이 수천만 달러가 증발했습니다. 불과 반년 만에 아파트 단지 전체의 마루를 다시 뜯어낸 사례는, 순응 없는 시공이 얼마나 큰 대가를 치르게 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좋은 수종을 썼느냐”가 아니라 “충분한 순응 시간을 주었느냐”였습니다. 며칠의 기다림을 아끼려다 수억 원의 손실로 돌아온 셈입니다.
|
|
|
목재 순응이란, 나무가 새 집의 공기에 적응할 시간을 주는 것입니다. 최소 1~2주 동안 시공 장소에 그냥 둡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하지만 이 단순한 과정이 목재의 수명을 결정합니다.
나무는 벌채된 뒤에도 여전히 ‘살아있는’ 재료입니다. 세포 구조에 남은 미세한 통로를 통해 공기 중 수분을 흡수하고 방출합니다. 주변 환경의 습도에 따라 크기가 늘어나거나 줄어듭니다. 이 수분 평형을 찾아가는 과정 없이는 본래의 성능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
|
|
이는 새로운 개념이 아닙니다. 고대 이집트 장인들은 나일강의 범람기와 건조기를 이용해 목재를 보관했습니다. 동아시아 전통 목조건축에서는 “베어낸 나무를 바로 쓰지 말고 계절을 지나게 하라”는 지혜가 전해졌습니다. 중세 유럽의 목수 길드 규칙에도 “겨울에 베어 여름을 지나게 하고, 여름에 베어 겨울을 지나게 하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20세기에 들어서야 이 경험적 지혜는 함수율(Moisture Content)과 평형함수율(EMC)이라는 과학적 원리로 설명되기 시작했습니다. 목재가 주변 환경에 반응해 평형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수축과 팽창이 일어납니다. 이 과정을 거치지 않고 시공하면, 설치 후 환경 변화에 따라 뒤틀림과 갈라짐이 발생합니다.
|
|
|
순응은 단순히 방치하는 것이 아닙니다. 포장을 벗기고, 바닥에서 살짝 띄우며, 판재 사이로 바람이 지나가게 합니다. 온도는 18~24℃, 습도는 40~60%입니다. 이 범위 안에서 최소 1~2주 동안 나무는 제 숨을 찾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이렇습니다. 목재를 시공 장소에 반입하면 즉시 포장을 풉니다. 바닥에서 5cm 이상 띄워 각목 받침을 두고, 판재 사이는 1cm 간격을 유지합니다. 온습도계로 매일 기록합니다. 여름 장마철에는 3주, 겨울 난방이 강한 실내에서는 1주면 충분합니다.
반대로 하면 안 되는 것도 명확합니다. 포장된 채로 방치하거나, 지하실이나 창고에 보관하거나, 한쪽만 햇빛에 노출시켜서는 안 됩니다. 실무에서는 함수율 측정기로 일부 표본을 검사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충분한 순응 기간이 보장되는가입니다. 이것이 수치를 맞추는 것 이상으로 근본적인 해결책입니다.
|
|
|
순응이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무엇보다 ‘잘 건조된 목재’라는 대전제가 깔려야 합니다. 순응은 마법이 아닙니다. 이미 잘 건조된 목재여야만 순응이 의미를 갖습니다. 목수가 믿을 만한 목재소를 찾는 이유입니다.
좋은 목재는 세 단계를 거칩니다. 결이 고른 원목을 선별하고, 결을 읽는 장인이 눈썰미 있게 제재하며, 자연건조로 서서히 원목의 응력을 줄이고 인공건조로 정밀하게 목표 함수율까지 도달시키는 숙성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잘 건조된 목재’가 새로운 집이라는 환경에 최종적으로 적응하는 마지막 단계가 바로 순응인 셈입니다.
|
|
|
▲ 원목 테이블 하부 구조를 결구하는 방법이나 나비장부(butterfly joint) 사용 역시 목재의 수축률을 고려해야 한다. (사진 출처 : 우드코디KW)
|
|
|
수종에 따라 순응의 필요성도 달라집니다. 참나무와 단풍나무 같은 활엽수는 수분 변동에 민감해 더 긴 순응 기간이 요구됩니다. 반대로 소나무나 전나무 같은 침엽수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어서 짧은 기간에도 큰 변형이 적습니다.
흥미롭게도 티크나 이페 같은 열대 경재는 치밀한 조직 덕분에 일상적인 습도 변화에는 강하지만, 그 뛰어난 내구성 자체가 함정이 될 수 있습니다. 내부에 쌓인 응력이 임계점에 이르면 변형이 한순간에 크게 터져 나오고, 단단한 만큼 되돌리기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이런 수종일수록 더 철저한 순응 관리가 필요합니다.
|
|
|
우리나라에서도 목재 순응의 부재로 인한 하자는 흔합니다. 특히 빠른 공정을 요구하는 현장에서 목재 순응은 ‘생략 가능한 절차’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순응 과정을 생략한 마루와 가구는 몇 년이 지나지 않아 하자가 드러나고, 이는 소비자에게 목재 자체에 대한 불신으로 각인됩니다.
|
|
|
▲ 목재는 나무가 자라온 방향, 햇빛을 받은 시간, 계절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재료라서 고유한 물성을 갖는다. (사진 출처 : 우드코디KW)
|
|
|
이 문제는 시공자만의 책임이 아닙니다. 건축주 역시 목재가 현장에 반입된 후 최소 1~2주의 순응 기간을 계약에 명시하고, 그 기간 동안 실내 온습도가 실제 거주 환경과 유사하게 유지되었는지를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온습도계 사진, 환경 관리 일지 같은 것들 말입니다.
반대로, 충분한 순응을 거친 목재는 작은 틈이나 변형이 있더라도 구조적으로 안정적이며, 이는 목수가 나무의 움직임을 이해하고 설계했음을 보여줍니다. 순응의 책임은 시공자만의 것이 아닙니다. 건축주도, 소비자도 알아야 합니다. 목재가 반입된 날짜와 실내 온습도 기록, 이 작은 증거가 신뢰를 만듭니다.
|
|
|
▲ 미국 전문지 『Floor Covering News』도 ‘목재 순응은 장기 안정성과 성능의 핵심’이라 강조한다. ( 사진 출처 : floorcoveringnews)
|
|
|
목재 순응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입니다. 하지만 이 시간이 나무의 수명과 건축의 신뢰를 결정합니다. 좋은 목재를 고르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그 목재가 숨 쉴 시간을 주는 일입니다.
건축의 본질은 자연과 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공간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 공간 안에서 나무는 여전히 살아 숨 쉽니다. 우리가 할 일은 단 하나, 그 숨을 존중하고 기다려주는 것입니다.
|
|
|
나무를 켜고, 깎고, 다듬는 건 익숙한데 글은 쓸 때마다 골치 아픈 우드코디BJ입니다.
그래도 나무를 좋아하고, 목재를 좋아하실 여러분과 소통하고 싶어 오늘도 씁니다.
|
|
|
저희 목재소는 현재 김포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꼭 나무를 찾으러 오시는 것이 아니더라도 괜찮습니다.
언제든지 편하게 방문해 주시면, 저희가 성심껏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의 방문을 언제나 환영합니다! 😁 |
|
|
유림목재 & 데일리포레스트woodstore@naver.com경기도 김포시 양촌읍 구래로 124 (양촌읍) 02 - 3158 - 3131수신거부 Unsubscribe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