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멎은 도심을 걷다 보면, 숨기려 했던 부실이 외벽에 고스란히 드러난 건물을 마주하게 됩니다. 목재 마감재가 부풀고 들뜨거나, 패널이 떨어져 나간 자국이 선명합니다. 많은 이들이 "좋은 목재면 오래 간다"고 믿지만, 그것은 절반의 진실일 뿐이죠.
아무리 내구성이 뛰어난 수종의 목재라도 숨 쉴 길이 없으면 습기와 곰팡이 앞에서 무력해집니다. 건물의 수명을 좌우하는 것은 외장용으로 검증된 목재 사용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공기층의 존재 여부입니다.
강수차단층, 영어로는 레인 스크린(Rain Screen)이라 부르는 이 구조는 건물의 허파입니다. 외장재와 벽 사이, 그 보이지 않는 공기층이 건물을 살립니다. 빗물은 배수시키고, 내부 습기는 건조되도록 합니다. 단순해서 더 강력한 원리입니다. 건물의 내구성은 여기서 갈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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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수차단층 모식도에 FURRING(띠장)이 명시돼 있다. ( 사진 출처 : EPV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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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차단층 개념이 정립되기 전, 건축은 ‘막는 방식’에만 의존했습니다. 1980~90년대 캐나다 밴쿠버에서는 수천 채의 콘도미니엄이 누수와 곰팡이로 대규모 소송에 휘말리며, 수십억 달러의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이른바 리키 콘도 크라이시스(Leaky Condo Crisis)였습니다. 외벽이 숨을 쉬지 못하면 건물 전체가 병든다는 사실을 뼈아프게 확인시킨 사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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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원리는 사실 새로운 발명이 아니었습니다. 12세기 노르웨이 울네스 교회 외벽에는 이미 강수차단층의 원형이 적용되어 있었습니다. 경험에서 얻은 지혜였죠.
이후 1940년대 노르웨이 건축연구소의 연구로 재조명됐고, 1960년대에는 강수차단층 설계 원리로 정립되며 현대 건축의 표준이 되었습니다. 고대의 직관이 현대 과학으로 증명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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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하게 부후된 리키 콘도 외부 마감재 ( 사진 출처 : www.rew.ca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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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도 사례는 많습니다.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의 굴곡진 외벽은 아름답지만, 빗물이 흐를 길이 막혔습니다. 배수 설계가 미흡해 누수로 이어졌습니다. 설계와 시공 간 소통 부족으로 구배(빗물이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하는 경사) 조정과 배수 구멍 시공이 부정확했던 것이 원인으로 지목됩니다. 부산 현대미술관의 수직녹화 외피는 식물층의 배수 불량으로 누수와 곰팡이가 생겼으며, 공기층 미형성과 배수로 막힘이 문제를 키웠습니다.
반면, 노원구 ‘월계문화체육센터(원터어울마루)’는 강수차단층을 제대로 적용해 호평받았습니다. 벽체와 외장재 사이에 충분한 환기층을 확보하고, 세로 띠장 위에 가로 띠장을 교차 설치해 물길과 바람길을 동시에 열었습니다. 설계 단계부터 공기층을 필수 구조로 인식하고, 시공 시 배수 구멍의 막힘이 없도록 철저히 관리한 것이 성공 요인이었습니다. 같은 시기, 같은 도시에서 벌어진 명암입니다. 차이는 숨길의 존재 여부, 단 하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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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차단층의 성패는 띠장(외장재를 벽에서 띄우는 가로·세로 프레임)에 달려 있습니다. 띠장은 외장재를 벽에서 살짝 띄워 고정하는 나무 또는 금속 프레임입니다. 마치 옷을 겹쳐 입듯, 띠장은 외장재와 벽 사이에 공기층이라는 속옷을 입힙니다. 그 작은 틈이 배수로이자 환기구가 됩니다. 침투한 빗물은 아래로 흘러내리고, 벽 안쪽의 습기는 위아래로 빠져나갑니다.
현장에서는 이 띠장을 설치하는 작업을 ‘상을 건다’고 말합니다. 세로 띠장을 먼저 벽에 고정하고, 그 위에 가로 띠장을 걸어 격자를 만듭니다. 이 이중 구조가 물길과 바람길을 동시에 열어줍니다. 일반적으로 25~50mm 두께면 충분합니다. 반대로 띠장이 끊기거나 부실하게 시공되면 습기가 고여 곰팡이, 결로, 구조체 부식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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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 선택도 중요합니다. 가벼운 목재 사이딩에는 방부 처리된 침엽수 띠장이 적합합니다. 그러나 크윌라(kwila)나 이페(ipe) 같은 무겁고 단단한 열대 경재에는 나사 고정력이 뛰어난 활엽수 띠장이 더 안정적입니다. 바닥 데크에는 아연도금 철제 각파이프를 활용해 기초 프레임을 짜기도 합니다. 결국 외부 마감재의 무게와 특성에 맞는 띠장을 선택하고 정성 들여 시공하는 것이 건물 수명을 좌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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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철근콘크리트 구조물은 더욱 주의가 필요합니다. 많은 이들이 간과하는 사실이지만, 콘크리트가 경화되는 과정에서 내부에 갇힌 수분은 무려 3~5년에 걸쳐 서서히 증발합니다. 두께 20cm 콘크리트 벽 1㎡에서 나오는 수분량은 약 20~30L입니다. 이는 한 달에 걸쳐 내리는 빗물보다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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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비는 밖에서 오지만, 콘크리트 습기는 안에서 온다는 점입니다. 이 습기는 벽체 내부에서 목재 외장을 안쪽으로 지속적으로 적십니다. 신축 건물에서 유독 목재 외장 하자가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것이 RC 구조물에 목재 외장을 시공할 때, 단순한 방수층이 아니라 배수와 통기를 보장하는 강수차단층이 필수인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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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식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아직도 많은 현장에서 강수차단층은 ‘있으면 좋은 옵션’ 정도로 취급됩니다. 설계 단계에서 누락되거나, 공사비 절감을 이유로 생략되는 경우가 잦습니다. 하지만 초기 비용을 아낀 대가는 혹독합니다. 조금의 절약이 결국 수억 원의 보수 비용과 신뢰 상실로 돌아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강수차단층 부실 시공으로 불과 10년 만에 토대가 부식된 사례가 빈번합니다. 대형 건축물도 예외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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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로코(iroko) 수종 목재로 외장 마감된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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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의 품질은 보이는 자재가 전부가 아니라, 드러나지 않는 부위에 숨은 섬세함에서 결정됩니다. 강수차단층은 단순한 방수층이 아닙니다. 그것은 배수와 통기를 보장하여 건물이 숨 쉬고, 목재가 살아남는 생명줄입니다. 외벽이 숨을 쉴 때, 집은 젖지 않습니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합니다. 외벽의 목재만이 아니라, 집 안의 나무도 제 호흡을 되찾을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요. 다음 편에서는 실내로 들어온 목재가 어떻게 숨 쉬고, 공간과 사람에게 무엇을 주고받는지 이야기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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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켜고, 깎고, 다듬는 건 익숙한데 글은 쓸 때마다 골치 아픈 우드코디BJ입니다.
그래도 나무를 좋아하고, 목재를 좋아하실 여러분과 소통하고 싶어 오늘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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