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설을 맞아 차례를 모시고 나니 을사년(乙巳年) 한 해가 진짜로 막이 오른 기분입니다. 그런데 나라 안팎으로는 새로운 ‘출발’을 앞둔 희망과 기대보다 뒤숭숭한 분위기가 그득합니다. 명절 전 만난 건설업체 사장님은 “예전부터 을사년에는 안 좋은 일이 많았잖아요. 올 한 해도 을씨년스럽네” 하며 하소연을 쏟아냅니다.
사전을 찾아보면 ‘을씨년스럽다’는 날씨나 분위기가 스산하고 쓸쓸하다는 뜻으로 나옵니다. 이는 1905년 일본이 우리나라를 식민 지배하기 위해 체결한 을사늑약에서 배경을 찾을 수 있습니다. 주권을 빼앗기고 나라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절망감과 어두운 사회 분위기가 이후 어수선한 시기가 도래하면 ‘을사년스럽다’라는 표현으로 쓰였습니다. 이 말이 형태를 바꿔 지금의 ‘을씨년스럽다’가 됐습니다.
을사년(乙巳年)은 ‘푸른 뱀의 해’라고 불립니다. ‘을(乙)’은 색상 중 푸른색에 해당하고 생명력과 성장을 의미합니다. ‘뱀(巳)’은 허물을 벗으며 성장하는 재생과 변화를 상징하는 동물입니다. 매년 대한민국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의 이슈를 분석해 발표하는 트렌드코리아 연구진은 을사년 트렌드를 ‘스네이크 센스(S.N.A.K.E.S.E.N.S.E)’라는 키워드로 제시했습니다.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할 수 없는 시대인 만큼 2025년을 살아가기 위해서 개인과 기업은 뱀(snake)처럼 섬세하고 예민한 감각(sense)이 필요하다고 조언합니다.
푸를 청(靑), 해 년(年) 자를 써 청년(靑年)이라고 합니다. 한자 의미대로 해석하자면 푸릇푸릇한 시기에 있는 사람입니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청년을 신체적·정신적으로 한창 성장하는 시기에 있는 사람이라고 설명합니다. 지난주 금요일 오후 종무식이 열렸습니다. 식순에서 중간급 관리자의 개회사는 생략됐고 대표이사의 격려사도 빠졌습니다. 대신 입사 3년 차 주임을 주축으로 구성된 디지털전환팀의 업무보고와 추진계획에 대한 발표가 있었습니다.
20대 중후반 디지털 세대들이 10여 분에 걸쳐 이야기하는 내용을 이삼십 년, 많게는 삼사십 년 근무한 아날로그 세대 선배들이 전부 이해했는지는 의문입니다. 전례 없는 방식으로 치러진 39번째 종무식은 줄곧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마무리됐습니다.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푸른 뱀의 해’이지만 푸른 희망의 젊은 사람들이 전하는 구상과 의욕은 한 줄기 희망으로 다가옵니다. 다 같이 그려갈 미래에 아름다운 결실이 맺혀 모두 함께 기뻐하는 그날이 오길 간절히 기도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