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날이면 일출 명소마다 인파가 북적이며 들뜬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작년 1월 1일, 일출을 보러 상암동 하늘공원에 올랐습니다. 아직 컴컴한 정상에 사람들이 모여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추위에 발을 동동 구르고 있습니다. 추위에 잔뜩 목을 웅크리고 있던 찰나 누군가 외칩니다. "뜬다 떠!" 동이 트기 시작하자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소원을 비는 사람들이 눈에 띕니다. 주위가 점점 훤하게 밝아지면서 뜨는 해를 지긋이 바라보는 이들의 환한 표정도 보입니다.
2025년 새해는 작년 이맘때와는 조금 다른 분위기입니다. 어느 한 해가 다사다난하지 않았을까만은 그래도 지난해 우리는 시름이 깊었습니다. 날씨보다 경기에 더 한파가 몰아치는 와중에 국정 운영은 큰 소동을 빚었고, 무안에서 들려온 가슴 아픈 소식에 연말연시도 추모 분위기 속에서 무겁게 흘렀습니다. 굵직굵직한 대기업들도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이어가는 마당에 작은 기업들은 오죽할까 생각이 듭니다. '폐업한 자영업자 100만 명 육박. 내년 더 어렵다' 라는 기사 제목에 마음이 영 편치 않습니다.
지난여름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어떤 치킨집에서 매일 인스타에 올리는 것. JPG’라는 게시글이 올랐습니다. 치킨집 SNS(사회관계망 서비스, 이하 SNS)는 신메뉴나 이벤트 홍보 게시물이 올라오는 게 대부분인데, 전남 광주의 이 프랜차이즈 치킨집 사장님은 매일 장사를 마치고 닭 튀긴 기름통을 깨끗이 씻어 사진을 찍고 인스타그램에 올렸습니다. 이 사진이 온라인상에 퍼지며 청결 상태가 신뢰 간다는 반응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깨끗한 치킨집'으로 입소문을 탄 이 치킨집은 멀리서도 찾아올 정도로 장사가 잘돼, 재료 소진으로 영업 마감시간보다 일찍 문 닫는 날도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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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직으로 입사했던 2008년 당시, 회사 컴퓨터에는 목제품이 설치된 공사현장을 찍어놓은 사진들이 꽤 많이 저장되어 있었습니다. 손님이 회사로 오시면 별문제가 없는데, 전화 상담은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통화하다 끊고 사진 골라 이메일로 보내고 다시 전화를 걸어 상담을 이어가는 식이라 번거롭기 짝이 없었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궁리하던 중에 블로그를 알게 됩니다. '옳거니, 사진을 올리고 글로 설명을 덧붙여 블로그에 올려두면 요긴하게 써먹겠구나.' 그렇게 블로그에 '블'字도 모르던 30대 중반 직장인의 좌충우돌 글쓰기가 시작됩니다.
고객의 궁금증에 답이 되는 블로그 글이 많아질수록 목재 상담이 수월해졌습니다. 업무 과정을 기록해두니 상사에게 업무 보고할 일도, 후배들에게 따로 직무교육할 필요도 줄었습니다. 그 사이 스마트폰이 대중화되었습니다. 해외 출장을 가면 카탈로그를 건네는 대신 회사를 소개하는 내용을 담은 블로그 글을 보여주었습니다. 블로그에 올려둔 업무 관련 사진들은 서로가 국적을 가리지 않고 소통할 수 있는 발판이 돼 주었습니다. 작년 말 공장으로 찾아온 남미 페루 목재회사 관계자들은 구글 번역 기능을 써서 블로그 글까지 다 읽어 보더군요. 참 편리한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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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팬데믹으로 대면 업무가 어려워지자 직원들은 하나둘씩 블로그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종일 공장을 돌아다니는 공장장은 유튜브에 영상을 올립니다. 저마다 업무를 소셜미디어(SNS)에 올리니 대면 회의는 줄었지만, 업무 소통은 오히려 질박해진 느낌입니다. 새카만 결재 화일 대신 개성껏 꾸민 SNS 창이 정감 있고, A4라는 크기 제약 없이 마음껏 올린 사진과 동영상을 보면 글쓴이가 전하려는 메시지가 입체적으로 다가옵니다. 결재란에 서명하는 대신 '좋아요'를 누르고, 피드백은 댓글로 답니다.
방문객이 공장을 셀프 투어할 수 있도록 만들겠다는 우드코디KW는 오늘도 목재에 붙일 QR코드와 매칭할 온라인 콘텐츠를 만듭니다. 관리행정업무를 담당하는 우드코디EK는 '김대리의 재직증명서'라는 블로그를 운영합니다. 요즘 대관업무가 많아 글 한 줄 올리지 못하는 날이 길어지고 있네요. 최근 명함을 새로 판 공장장은 구독자 수가 늘지 않는다며 주름이 깊어진 듯 보입니다. 영업파트로 부서를 옮긴 우드코디SH는 팀장 우드코디HB의 조언을 받아 목재를 수종별로 정리하며, 이를 매주 목요일 블로그에 연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목재 상담기를 연재하겠다던 우드코디HB는 '말로는 쉽지만, 글로 쓰는 건 참 어렵다'며 종종 고민을 털어놓습니다. 그 마음 저도 잘 압니다. 업무상 10년 넘게 글을 썼지만 늘 부족한 글솜씨가 아쉬울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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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일피일 미뤄졌던 공장 이전이 2017년 시작됐습니다. 인수한 부지에 낡고 오래된 공장이 있었기 때문에, 대수선 공사와 생산설비 및 목자재 이전을 병행했습니다. '고양시 덕은지구'에서 '김포한강신도시' 인근으로 이사가 마무리된 그해 12월 코로나19 팬데믹이 세계를 덮쳤습니다. 멈춰선 시간 동안 넋 놓고 있을 수만은 없어 하나둘씩 정리를 시작합니다. 집기도, 비품도, 자재도, 기계설비도. 이삼십 년 분량의 고객주소록과 명함 정리도...
그렇게 정리를 마치고 보니 이메일이 남았습니다. 못 쓰는 글 계속 쓰다 보니 올해는 이렇게 연하장을 써서 보내드릴 용기도 생겼습니다. 지나는 길 있으면 들려서 차 한잔하고 가셔요. 뵌 적 있는 유림 식구라면 반가이 맞이해 드릴 거고, 처음 만난 유림 식구라면 반갑게 인사드릴게요. 저희도 이따금씩 목재소 사람들 사는 이야기를 안부 삼아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그러나, 그러나 말입니다
해마다 이맘때쯤 텅 빈 가슴을
또 드러내어도
내년에는 더 나을 것 같은 마음이 드는데 어쩝니까?
오광수 시인이 쓴 <12월의 독백>에 나오는 시구의 마지막 구절입니다. 안팎으로 어려운 시기지만 다가오는 을사년(乙巳年) 새해는 우리 모두에게 '더 나은' 세상이 열리면 좋겠습니다. 쉼 없이 달려온 갑진년(甲辰年)은 묵은 해에 실어 흘려보내고, 사랑하는 이들과 덕담 나누며 새 희망 품는 1월 만드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