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삼일절과 광복절이 되면 낮 12시를 기해 서울 종로 보신각에서 기념 타종 행사가 열립니다. 타종에 참여한 여러 명의 국민대표들이 커다란 나무 기둥을 앞뒤로 서서히 흔들며 힘을 모아 보신각종을 때립니다. 이때 종을 울리는 커다란 나무 기둥을 '나무 목(木)' 앞에 '칠 당(撞)'을 붙여 당목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나라 곳곳의 사찰에는 시간을 알릴 때, 신도를 모으고 의식을 행할 때 쓰는 범종이 있습니다. 범종은 종신 내부에 추를 매달아 종 전체를 흔들어 소리를 내는 서양 종과 달리 종의 바깥쪽을 쳐서 소리를 내는 것이 차이점입니다. 종각 안에 놓인 범종은 땅에서 그리 높지 않은 곳에 걸려 있어서 종소리가 아래쪽으로 웅장하고 은은하게 울리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는 범종을 울리는 소리가 지옥에 빠진 중생들까지 구제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당목 만들기 좋은 나무는 뭔가요?
예전에는 범종을 놓을 때 사찰 주변에서 잘 자란 나무를 골라 당목으로 만들었는데, 소나무나 좀 더 단단한 느티나무, 박달나무, 느릅나무 등을 주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청동을 녹인 쇳물을 거푸집에 부어 만드는 범종도 충격이 쌓이면 금이 가는데, 나무로 만들어진 당목도 수명이 있다는 사실은 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밀도가 좋아 쇠를 울릴 무게감이 있고 내후성(耐朽性, 잘 썩지 않는 성질)과 내충성(耐蟲性, 해충 저항성)이 우수한 수종이 당목 제작에 적합니다. 최근 들어 당목 제작에 사용할 국산재는 구하기 어려운 탓에 크윌라(kwila)나 부빙가(bubinga), 이페(Ipe) 등 단단한 수입 하드우드(hardwood) 계열의 수종을 주로 씁니다.
전국 사찰에 자동 타종기가 늘어나는 사연
오늘 방문하신 범종 제작 업체 대표님은 수년 전 이페(ipe)로 당목을 만들어 납품했는데 재질이나 색상, 그리고 타종 시 소리가 좋아 추가 주문이 줄을 잇는다고 합니다. 본인이 제작하는 범종과 이페의 궁합이 아주 잘 맞는다고 합니다. 이 분이 제작하는 범종은 특별한 점이 있습니다. 바로 기계의 힘을 빌려 정해진 시간에 자동으로 타종이 이뤄지는 범종과 당목을 한 세트로 공급합니다. 한마디로 범종각에 무인 타종 시스템이 도입되는 셈이죠.
"요즘 일 때문에 사찰마다 다녀보면 스님도 그렇고 신도들도 나이 든 분들이 다예요. 이른 새벽이나 늦은 저녁 시간대는 종칠 여력이 모자라고, 당목이 크고 무거우니 힘에도 부치고 나이가 있으니 다치기라도 하면 정말 큰일이죠."
한국 사회에 닥친 인구 감소 충격파가 종교계에도 타격을 주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어느 교단을 가릴 것 없이 대부분의 종교가 구인난에 빠진 가운데 1999년 출가자가 532명에 달했던 조계종도 2023년에 이르자 그 수가 61명에 그쳤습니다. 젊은 출가자와 행자가 줄어 사찰마다 인력난에 허덕이고 있으며 출가 연령대를 살펴봐도 과거에는 20~30대 출가자가 가장 많았지만, 2020년 기준 20대 승려는 1% 남짓입니다. '무인 타종 시스템'이라는 말이 듣기에는 다소 생소하지만 설치가 확산되는 이유입니다.
국내 주요 대기업들도 피해 가지 못한 '고령화'
“전 세계적으로 종교 의존도가 낮아지는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유독 속도가 빠르다. 특히 코로나를 지나오면서 더 심화되면서 20~40대 젊은 신도들의 유입이 크게 줄었다”
지난해 조계종 총무원장이 인터뷰 자리에서 기자들에게 한 말입니다. '탈(脫) 종교화' 추세에 2030 불자들의 이탈이 가팔라지면서 종단이 빠르게 고령화되고 있습니다. 사실 이는 비단 불교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기독교, 천주교, 원불교 등 교계를 막론하고 젊은 MZ 신도와 종교인을 유인하기 위해 다양한 대책을 내놓고 있는 형편입니다.
이는 사실 종교계에 국한된 문제가 아닙니다. 속세에 기업들을 봐도 2030 직원은 갈수록 줄어드는 반면 나이 든 직원 비중은 늘어나는 '역피라미드' 인력 구조가 뚜렷해졌습니다.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 사이에서도 비교적 처우가 열악한 중소기업은 기피하는 성향이 강해지고, 중소 제조기업의 생산 현장에서는 젊은이가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근로 여건이 좋다는 대기업 취업에 성공한 젊은이들도 그리 오래 다니지 않는다는 겁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100인 이상 기업 500개사를 설문한 결과, 신입 사원을 채용한 기업 중 81.7%는 입사한 지 1년이 안 돼 퇴사한 직원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우리나라는 매년 12월 31일 밤 12시가 되면 서울 보신각에서 서른세 차례 타종되는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희망찬 새해를 맞이합니다. 제야의 종은 섣달그믐날 밤에 중생들의 백팔번뇌를 없앴다는 의미로 불교 사찰에서 108번 종을 치던 불교행사에서 유래했습니다. 불교에서는 번뇌의 뿌리가 되는 6가지를 '6근(根)'이라고 합니다. 눈(眼), 귀(耳), 코(鼻), 혀(舌), 몸(身), 뜻(意)이 그것입니다.
중생은 6가지 감각기관을 통해 살아가면서 '즐거운 마음(好)', '불편한 마음(惡)',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상태(平等)'라는 세 가지 인식 작용을 일으킨다고 합니다. 누구든지 함께 있기 불편한 자리라면 얼른 그 자리를 떠나고 싶을 겁니다. 반대로 함께 있으면 좋은 사람들이 이곳에 많다면 오고 싶어 하는 이들도 늘어나지 않을까요. 열정적인 젊은이가 들어오면 좋겠다는 희망에 앞서, 나부터 좋은 사람이 되겠다고 노력하는 윗사람이 사회에 많아지길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