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강원도 평창으로 워크숍을 떠난 서울사무소 이사님으로부터 카톡 메세지가 왔습니다. 어느 산중 카페에서 우연히 우리 회사를 방문해 목재를 구입한 적이 있다는 분을 만나 한참을 즐겁게 이야기 나누셨다고 합니다. 카톡 사진을 확대해서 보니 오래 전이기는 하지만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 얼굴입니다. 수년 전에 본사 공장으로 오셔서 제가 직접 상담을 했던 분이더라구요. 속으로 '참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설핏 들었습니다. 당시 상담하면서 그래도 나쁜 인상을 드리지는 않았나보다 하고 말이죠.
이사님이 보내준 사진을 보다보디 옛날 생각이 떠오릅니다. 대략 20년 전쯤으로 기억하는데...
지금 회사에 30년 넘게 몸담은 터라 정말 많은 부하직원들을 겪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이미선 주임은 키도 작고 왜소했지만 일 하나는 정말 야무지게 잘했습니다. 말그대로 키만 작을 뿐 모든 걸 잘했습니다. 손재주도 무지하게 좋아 명절 전 고객사에 보낼 수백 개의 달력 포장도 재빠르게 해냈고, 성격도 밝고 목소리도 낭랑해 손님들이 특히나 예뻐하셨죠.
그런데 어느날부터 이 친구가 자동차면허를 딴다고 운전학원에 등록하고 열심히 다녔습니다. 머리가 영리한 편이라 필기는 금방 합격 했지만, 작은 키 때문인지 실기에서는 번번이 낙방을 했습니다. 그 때문에 당시만 해도 '칼퇴'라는 단어가 없었던 시절인데, 집도 먼 친구라 오후 5시면 실기 수업하러 칼퇴를 하는 일이 빈번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 이미선 주임이 자기는 퇴사할거라면서 내일부터 나오지 않겠다고 선언합니다. 운전면허 떨어진 것도 속상한데 회사 눈치까지 봐야하는 상황이 너무 싫어졌답니다. 예기치 않았기에 순간 놀랬고, 철부지 같은 칭얼거림에 살짝 어이도 없어 별다른 대꾸는 하지 않았습니다.
점심 식사를 마친 오후 그녀를 조용한 곳으로 불러냈습니다. 이후 한참동안 이 주임은 그간의 서러웠던 일들을 쏟아냈습니다. 이윽고 흐르는 눈물이 멈춘 그녀에게 당부를 전합니다.
"이미 마음이 떠났으면 퇴사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다. 대신 선배로서 마지막 부탁이다. 묵은 감정은 일단 뒤로 미뤄두고, 사장님이나 선배들에게 정중히 말씀 잘 드리고 마무리하렴. 군더더기 없이 헤어져야 설령 나중에 길거리에서 만나더라도 반갑게 인사 나눌 수 있을거야."
한참을 고민하던 그녀는 며칠이 지나자 감정을 잘 추스렸는지 상사들을 일일이 만나 뵙고 밝은 얼굴로 양해를 구하며 사직의 뜻을 밝혔습니다.
퇴사 후에도 그녀는 회사에 자주 놀러왔습니다. 청첩장을 들고 온 날 저녁에는 맥주잔을 기울이며 축하 파티도 열었습니다. 그녀의 결혼식 날, 저를 포함한 많은 직원들이 기꺼이 참석해 신랑신부의 백년해로를 응원했죠.
시간이 흘러 어느덧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이 주임이 오랜만에 남편과 아이들을 대동하고 회사로 찾아왔습니다. 지나가는 길에 들렸답니다. 오가던 회사 동료들도 벌써 아이들이 이렇게 컸냐며 반색합니다. 한참을 머물다 이제 가야된다며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가 말합니다.
"그 때 팀장님 말 듣기를 정말 잘한 것 같아요. 너무 감사해요."
한 회사를 30년 넘게 다니다 보니 많은 '시작'과 '마무리', 그리고 그 이후에 일어나는 일까지 보게 됩니다. 그러면서 설레는 첫 만남 만큼이나 개운한 끝맺음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번번히 깨닫곤 합니다.
이번 주말에는 아이들 좋아하 치킨 두어마리 포장해서 미선이네 놀러가야겠네요. 우드러버 여러분들도 이번 한 주 잘 마무리하시고 좋아하는 분들과 알콩달콩한 주말되시길 바랍니다.
제재소 근무 30년차라 목재 상담은 어렵지 않은데 글은 쓸 때마다 힘든우드코디HB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