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스는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 동안 운영됐다. 여러 수종으로 만든 한글 자모와 원목 큐브 등이 진열됐다. 방문객들은 색과 나뭇결이 다른 목재를 만져보고, 한글 자모를 조합해 단어나 이름을 만들어볼 수 있었다. 외국인 방문객들도 나무로 한글을 만들어보는 체험에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그렇다고 부스가 북적였던 것은 아니다. 이틀 동안 부스를 찾은 방문객은 15명 남짓이었다. 그들이 목재와 함께 우리 회사 이름까지 기억했을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월요일 아침, 출근한 H연구원이 주말 동안 있었던 일을 들려줬다. 혼자 부스를 운영하다가 잠시 자리를 비워야 하는 경우가 생길 때마다 주변 부스 운영자들에게 우리 부스를 잠깐 봐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반대로 이웃 부스에서 체험행사를 진행하는 등 일손이 필요해 도움을 청하면 H연구원도 건너가 일을 거들었다고 했다.
나는 주변 부스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라고 했을 뿐이었다. 자리를 비워야 할 때 누구에게 부탁할지, 다른 부스의 요청에 어떻게 응할지까지 일일이 말하지 않았다. 그런 일은 연구원이 현장에서 직접 판단했다.
행사를 마친 뒤 사후강평회를 진행했고, H주임과 H연구원은 함께 행사 결과 보고서를 작성했다. H연구원은 처음에는 이웃 부스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얼굴을 익히는 일이 왜 중요한지 잘 몰랐지만, 강평회에서 주말의 경험을 돌아보며 그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보고서에 적었다. 강평회에서 나눈 이야기를 담은 회의록은 모든 임직원이 볼 수 있도록 업무용 카페에 게시됐다.
행사가 끝나고 며칠 후, 음료수를 사러 명동 골목을 돌아다니며 품었던 의문이 다시 떠올랐다. 왜 명동예술극장 주변에서는 편의점보다 약국이 더 눈에 띄었을까. AI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높은 임대료와 외국인 관광객의 의약품·건강제품 구매 수요가 맞물렸을 수 있다는 설명이 돌아왔다. 내 짐작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예전 같으면 혼자 길을 걷다가 생긴 궁금증은 그저 짐작으로 남았을 것이다. 곁에 일행이 있더라도 그 역시 정확한 이유를 알기는 어려웠을 테다. 그렇다고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검색 엔진에 물으려 해도 어떤 검색어를 넣어야 할지부터 막연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AI에게 궁금한 것을 물어보고, 돌아온 설명을 내 생각과 비교해 볼 수 있다. 십수 년 사이 달라진 것은 명동만이 아니었다. 길에서 떠오른 의문을 풀어가는 내 방식도 달라져 있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옛말이 있다. 이제는 백 길 물속도 AI에게 물어볼 수 있는 시대다. 하지만 인연을 맺고 이어가는 일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고, 사람을 대하는 법도 직접 어울리고 부대끼는 가운데 배운다고 나는 평소 생각해왔다.
서로 모르던 사람과 아는 사이가 되는 것을 흔히 '안면을 튼다'고 한다. 첫 만남에서 어떤 인상을 남기고, 그 뒤에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인연은 호연이 되기도 하고 악연이 되기도 한다.
그 주말 명동에서 우리 회사와 인연을 맺은 사람들은 관람객만이 아니었다. 이웃 부스 운영자들도 있었다. 현수막에도, 미니배너에도, 리플릿에도 회사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 이름을 걸고 이틀 동안 관람객을 맞이하고 이웃 부스 사람들과 부대낀 이는 H연구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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