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8일 오전 6시 54분, 인천 서해구 석남동 쿠팡 32 물류센터 6층에서 불이 났다. 불길은 7층까지 번졌다. 지상 8층, 연면적 약 29만 9000㎡에 이르는 거대한 건물에서는 검은 연기가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소방당국은 20일 오후 8시께 큰 불을 잡았지만 불이 완전히 꺼진 건 22일 오후 8시 35분이었다. 화재 발생 109시간 40여 분 만이었다.
낮에는 물류센터 상공을 뒤덮은 검은 연기가 멀리서도 보였다. 밤이면 소방차가 뿜어 올린 물줄기 사이로 불빛과 연기가 뒤섞였다. 불은 건물 안에서 시작됐지만 연기는 담장을 넘어 퍼졌다. 인근 주민들은 창문을 닫아야 했고, 집을 떠나 학교에 마련된 임시대피소로 향한 이들도 있었다.
진화가 어려웠던 이유 중 하나는 6층에 쌓여 있던 다량의 가연성 생활용품이었다. 내부가 워낙 넓은 데다 구조까지 복잡해 불길에 접근하기도 쉽지 않았다.
‘생활용품’에는 온갖 물건이 포함된다. 이번 물류센터에 어떤 재질의 제품이 얼마나 보관돼 있었는지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그래도 지금 우리 집 안을 한 바퀴 돌아보면 어떤 재료들이 일상에 들어와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옷장에는 폴리에스터 같은 합성섬유로 만든 옷이 걸려 있다. 소파와 매트리스에는 폴리우레탄 폼이 쓰인다. 책상 아래 전선은 PVC 같은 합성수지 피복으로 둘러싸여 있다. 가전제품 외장과 수납함, 각종 포장재에도 여러 종류의 플라스틱이 들어간다.
이번 화재에서 무엇이 탔는지는 검은 연기만으로 특정할 수 없다. 다만 불이 시작된 물류센터 6층에는 생활용품이 대량으로 쌓여 있었다. 생활용품에는 석유화학 소재가 널리 쓰인다. 이런 가연물이 타는 동안 탄소 성분이 완전히 연소되지 않으면 미세한 검댕 입자가 생길 수 있다. 이 검댕이 빛을 강하게 흡수하면 연기는 우리 눈에 짙은 회색이나 검은색으로 보인다.
가스레인지와 전기밥솥이 지금처럼 흔하지 않던 시절, 집집마다 아궁이에 불을 지펴 밥을 했다. 장작과 솔가지, 볏짚을 넣어 부뚜막 위 솥을 달궜다. 저녁밥을 지을 때가 되면 마을 굴뚝 여기저기에서 희뿌연 연기가 폴폴 피어올랐다.
장작을 태운다고 늘 흰 연기만 나는 것은 아니다. 불꽃이 세게 일 때는 검댕이 섞인 어두운 연기가 날 수도 있다. 반대로 불꽃이 약한 채 천천히 타는 훈소 상태에서는 비교적 큰 연기 입자가 생기는 경향이 있다. 이 입자들이 빛을 산란시키면 연기는 희거나 옅은 회색을 띤다.
아궁이에 불을 때던 과거에도 집에는 나무와 종이, 짚처럼 불에 타는 물건이 많았고 화재도 있었다. 달라진 건 집 안을 채우는 재료다. 나무와 종이, 짚에 더해 합성섬유와 플라스틱, 폴리우레탄 폼 같은 석유화학 소재가 생활 곳곳에 자리 잡았다. 덕분에 옷은 가벼워졌고 소파는 푹신해졌다. 물건을 가볍게 포장해 대량으로 나르기도 쉬워졌다.
이렇게 달라진 재료가 화재 때 어떤 차이를 만드는지 살펴본 실험도 있다. 미국 UL 리서치 인스티튜트의 화재안전연구소(FSRI)는 비슷한 크기의 거실 두 곳을 꾸미되 실내 재료를 다르게 배치해 화재 양상을 비교했다.
한쪽에는 면으로 덮은 소파와 원목 가구, 목재 바닥 등을 놓았고, 다른 쪽에는 폴리에스터 천과 폴리우레탄 폼으로 만든 소파, 합성섬유 카펫과 플라스틱 생활용품 등을 배치했다.
같은 방식의 비교 실험은 네 차례 진행됐다. 천연재료 중심 거실은 첫 실험에서 공간 전체가 불길에 휩싸이는 ‘전실화’에 이르기까지 29분 30초가 걸렸고, 나머지 세 차례에는 30분이 지나도록 전실화되지 않았다. 반면 합성재료 중심 거실은 네 차례 모두 3분 20초에서 4분 50초 사이에 전실화됐다.
불이 빨리 번지는 것만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물건이 탈 때 생긴 연기는 사람의 몸속으로 들어온다.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는 모든 화재 연기가 유해하다고 설명한다. 화재 연기에는 여러 기체와 액체 방울, 고체 입자가 뒤섞여 있으며 무엇이 어떤 조건에서 타느냐에 따라 구성도 달라진다.
대표적인 것이 일산화탄소다. 일산화탄소는 혈액 속 헤모글로빈과 결합해 산소 운반을 방해하고, 두통과 어지럼증, 판단력 저하를 일으킬 수 있다.
타는 재료에 따라 다른 유해물질도 생길 수 있다. 폴리우레탄 폼처럼 질소를 포함한 재료에서는 시안화수소가, PVC처럼 염소를 포함한 재료에서는 염화수소가 발생할 수 있다. 물론 이번 쿠팡 물류센터 화재에서 이런 물질이 검출됐다는 뜻은 아니다.
연기 속 작은 입자는 코와 목에서 모두 걸러지지 않은 채 호흡기 깊숙이 들어갈 수 있다. 목재가 탈 때 나는 연기 역시 여러 기체와 미세입자가 뒤섞여 있다.
인천 서해구에 따르면 7월 27일부터 8월 3일까지 쿠팡 측에 접수된 주민 피해는 300여 건이었다. 이 가운데 140여 건은 화재 연기를 들이마신 뒤 기침이나 두통, 목 통증 등을 겪었다며 의료비 지원을 요청한 사례였다.
며칠 전 직장 동료들과 점심을 먹다가 관리부 대리에게서 집에 불이 날 뻔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퇴근하고 집에 가 보니 거실 멀티탭에 짙은 밤색의 탄 자국이 남아 있어 깜짝 놀랐다고 했다.
그녀는 다른 동료들에게도 멀티탭과 플러그 주변의 먼지를 주기적으로 청소하고, 오래된 것은 새것으로 바꿔야 한다며 한참 열을 올렸다.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제법 선선해졌다. 다가오는 주말에는 창문을 활짝 열고 가구 뒤에 오래 꽂아둔 멀티탭부터 뽑아 묵은 먼지 좀 털어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