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목재소 근무 3년 차 우드코디 SH입니다.
매주 목요일, 나무에 대한 이야기들을 전해드리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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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홀에 세워진 카메룬산 부빙가 원목. (사진출처 : 유림목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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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회사에 방문해 주신 손님 한 분이,
공장 내부에 있는 큰 부빙가 원목을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큰 나무는 처음 보네요.”
이에 선배님의 대답은
"그렇죠. 지금은 이런 원시림 원목은 들어오기 힘들어요."
그 말을 들으니, 익숙했던 이 나무가 다르게 보였습니다.
그리고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이런 큰 원목은 예전에는 어떻게 들어왔고,
지금은 왜 예전처럼 쉽게 들어오기 어려워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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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님께 여쭤보니,
“예전에는 큰 원목들이 벌크선으로 들어왔지.
지금도 일부 원목으로 들어오는 나무들이 있긴 하지만,
예전과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어.
한 가지 이유라기보다 여러 가지가 함께 바뀐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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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나다 현지에서 원목을 벌크선에 선적하는 모습. (사진출처 : 유림목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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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 자연스럽게 한국 목재산업의 흐름으로 이어졌습니다.
과거에는 동남아 등지에서 벌채된 남양재 원목들이
벌크선에 실려 국내 항구로 들어왔습니다.
라왕류를 비롯한 여러 열대 활엽수 원목들이 대량으로 들어왔고,
그 원목들은 국내 제재소와 합판공장으로 옮겨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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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판 제조를 위해 원목을 회전시키며 얇은 단판(베니어)으로 깎아내는 공정. (사진출처 : 한국목재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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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우리나라 목재산업의 큰 축 중 하나는 *합판(Plywood)산업이었습니다.
*합판: 원목을 얇은 단판으로 깎아낸 뒤, 나뭇결 방향을 서로 엇갈리게 겹쳐 붙인 판재.
지금은 흔한 건축자재처럼 여겨지지만,
한때 합판은 한국 경제성장기와 함께 움직였던
중요한 수출 산업이었습니다.
한국의 합판산업은 1960년대 중반 이후 빠르게 성장했고,
1970년대에는 세계적인 합판 생산·수출국으로 올라섰습니다.
당시 한국은 동남아 등 산지국에서 원목을 들여와 국내에서 단판을 깎고,
합판으로 가공해 다시 해외로 수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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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판의 단판 배열 구조. 각 층의 나뭇결 방향을 서로 엇갈리게 배치해 강도와 안정성을 높입니다.
(사진출처: Cameron Sloc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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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흐르며 국내 합판산업은 점차 축소되었고,
오늘날의 목재 수입 환경은 과거 대량 유통 시대와
전혀 다른 양상을 띠게 되었습니다.
그 변화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산지국의 변화입니다.
예전에는 원목 그대로 수출하던 나라들도 시간이 지나며
자국 내 목재산업을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원목을 그대로 내보내는 것보다,
현지에서 제재목이나 판재로 가공해 수출하는 편이
더 높은 부가가치를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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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지 인근 제재소에 모인 원목들. (사진출처 : 벤쿠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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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 보호와 규제도 중요한 이유입니다.
오래된 천연림과 원시림을 보호하기 위해 벌채량을 줄이거나,
일부 수종의 벌채 자체를 제한하는 경우도 생겼습니다.
어떤 나무는 원목 상태의 수출이 막히고,
어떤 나무는 국제적인 보호와 관리 대상이 되었습니다.
또 지금은 목재를 수입할 때 합법적으로
벌채된 목재인지 증빙해야 하는 제도도 운영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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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야쿠시마 원시림. 야쿠시마는 세계자연유산과 국립공원 등 여러 보호 제도 아래 관리되고 있다. (사진출처 : MEGURI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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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류 방식도 달라졌습니다.
과거에는 큰 원목을 벌크선에 대량으로
싣고 들어오는 방식이 많았지만,
오늘날에는 제재목, 판재, 각재처럼 규격화된 목재가
컨테이너에 실려 들어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큰 원목을 그대로 들여와 가공하던 방식보다,
산지에서 일정 부분 가공된 목재를 들여오는 흐름이 커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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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오스 현지에서 제재된 목재를 컨테이너에 적재하는 모습. (사진출처 : 유림목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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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원목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다만 산지의 산업 구조, 산림 보호와 규제, 물류 방식의 변화가 겹치면서
예전처럼 큰 원목을 대량으로 들여와
국내에서 가공하던 시대가 달라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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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한국 목재시장의 또 다른 흐름이 나타납니다.
1970년대 합판산업의 전성기가 지나고,
1980~1990년대를 거치며 국내 목재산업의 중심은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대량으로 원목을 들여와 합판을 만들어 수출하던 구조는 점차 약해졌고,
목재는 국내 건축자재와 인테리어 시장 안에서
새로운 쓰임을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고급주택, 타운하우스, 상업공간, 맞춤가구에 대한 관심이 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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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계동 옥토교회 예배당. 콘크리트 보에 마감재로 부빙가가 사용되었다. (사진출처 : 우드플래닛)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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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심 사옥에 사용된 아프젤리아 계단재. (사진출처 : 우드플래닛)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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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판산업의 기준에서는 원목을 얇게 잘 깎을 수 있는지가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너무 단단하거나 무겁고, 결이 복잡한 열대 활엽수들은
남양재, 잡목 같은 묶음명으로 취급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건축과 인테리어의 기준에서 보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단단함은 내구성이 되고, 화려한 무늬는 공간의 포인트가 되며,
큰 덩치는 그 자체로 존재감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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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면대패 가공을 마친 부빙가. 가공 후 드러난 붉은 색감과 결이 눈에 띈다. (사진출처 : 유림목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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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공장 안에 있는 큰 부빙가 원목도 이제는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예전 같았다면 크고 단단해 다루기
까다로운 나무로 여겨졌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크기와 무늬,
묵직한 존재감 때문에 특수목으로 불립니다.
시대가 바뀌면서 나무를 보는 기준도 달라졌습니다.
그 부빙가 원목은 그 변화를 보여주는 나무처럼 느껴집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어떠셨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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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 대한 매력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3년 차 우드코디 SH입니다.
목재에 대해 배우며 느낀 점을 여러분께 나누고 싶어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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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목재소는 현재 김포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꼭 나무를 찾으러 오시는 것이 아니더라도 괜찮습니다.
언제든지 편하게 방문해 주시면, 저희가 성심껏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의 방문을 언제나 환영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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