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픈 시절, 라면은 고마운 음식이었다. 쌀이 넉넉하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1970년대 한국에서는 정부가 쌀 소비를 줄이기 위해 혼분식을 장려했다. 밥상 위의 쌀을 아껴야 했고, 밀가루 음식은 부족한 식량을 메우는 현실적인 대안이었다. 그 시절 라면은 값싸고 빠르게 허기를 달래주는 음식이었다.
그러나 생활 수준이 달라진 뒤, 사람들은 라면에 다른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얼마나 짠가. 무엇이 들어갔는가. 자주 먹어도 괜찮은가.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음식의 성분표를 읽기 시작했다. 설탕과 나트륨, 각종 첨가물과 보존제가 들어간 이른바 초가공식품이라는 말이 식탁 위에 올라왔다. 사람들은 더 이상 배를 채우는지만 묻지 않았다. 그 안의 성분들이 내 몸에 이로운가, 해로운가를 묻기 시작했다.
그러나 공간을 만드는 재료에 대해서는 아직 그만큼 묻지 않았다.
집값은 물었다. 입지는 따졌다. 브랜드는 골랐다. 어느 단지가 오를지, 어느 지역이 아직 늦지 않았는지, 어느 브랜드가 더 비싸게 불릴지 물었다. 그러나 그 집이 무엇으로 지어졌는지는 오랫동안 묻지 않았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정부는 건설을 경기 부양의 장치로 삼았다. 집은 빠르게 공급되었고, 더 빠르게 자산이 되었다. 사람들은 재료보다 가격을 보았고, 구조보다 입지를 보았다. 어느 순간 집은 사는 곳에서 사는 것이 되었다.
그 사이, 새 아파트의 방 안에서는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아이들이 밤새 몸을 긁었다. 팔 안쪽과 무릎 뒤가 붉어졌고, 피부는 갈라지고 진물이 났다. 기침이 오래갔고, 눈이 따갑고, 목이 아프다고 했다. 부모들은 처음에 감기인 줄 알았다. 계절 탓인 줄 알았다. 아이가 예민한 줄 알았다.
그러나 비슷한 증상이 여러 집에서 반복됐다. 새집증후군과 아토피가 본격적인 사회문제로 떠오르던 2000년대 초반, 당시 언론과 건강보험 통계에서는 아토피 피부염 진료 인원이 한 해 100만 명 안팎으로 거론됐다. 새 아파트 냄새, 벽지와 장판, 접착제와 가구에서 나오는 화학물질은 더 이상 새것의 냄새로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2022년 아토피 피부염 진료 인원도 97만 명을 넘었다. 그 가운데 9세 이하 아이들이 27만 1613명, 전체의 28%를 차지했다. 아토피 피부염 환자 열 명 중 세 명 가까이가 어린아이였던 셈이다.
이 숫자가 모두 새집 때문이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아이들의 몸은 먼저 반응하고 있었다. 새집증후군은 한때의 소동이 아니라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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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 안 공기가 사람을 아프게 할 수 있다는 문제를 다룬 『My House Is Killing M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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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새집 냄새라고 불렀다. 새 차 냄새와 비슷하다고도 했다. 사람들은 그것을 새것의 냄새, 좋은 냄새로 여겼다. 새 벽지 냄새, 새 장판 냄새, 새 가구 냄새. 막 입주한 아파트에서 나는 그 냄새는 한동안 새 생활의 냄새처럼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어떤 집에서는 그 냄새가 두통이 되었다. 아이들은 기침과 가려움에 시달렸다. 밤에 자꾸 긁고, 아침이면 눈이 따갑고, 목이 칼칼했다. 부모는 창문을 열었고, 방향제를 놓았고, 숯을 들여놓았다. 냄새가 빠지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떤 냄새는 쉽게 빠지지 않았다. 고통받는 이들이 늘어나고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면서 사람들은 그제야 새집 냄새라고 부르던 것의 이름을 알게 됐다.
새집증후군.
그 말이 등장하면서 집 안의 재료들이 하나씩 의심받기 시작했다. 벽지, 장판, 바닥재, 페인트, 접착제, 실란트, 합판, MDF, 새 가구. 모두 집을 완성하는 데 필요한 재료들이었다. 그러나 그 재료들이 만들어지고 붙고 칠해지는 과정에는 여러 화학물질이 들어갔다.
포름알데히드. 톨루엔. 벤젠. 자일렌. 이것들을 묶어 휘발성유기화합물이라고 부른다. 노출 정도에 따라 두통과 눈의 따가움, 피부 자극, 호흡기 불편을 일으킬 수 있는 물질들이다.
이름은 어려웠지만 현상은 단순했다. 새로 만든 재료 속 성분들이 조금씩 새어 나와 거실과 안방, 아이 방의 공기와 섞이고 있었다. 벽지는 종이만이 아니었다. 벽에 붙이기 위해 접착제가 필요했고, 색과 무늬를 내기 위해 잉크와 코팅이 들어갔다. 장판과 바닥재는 바닥에 얌전히 깔려 있었지만, 그 속의 합성수지에서 방출된 휘발성유기화합물은 새어 나와 거실과 안방의 공기와 섞이고 있었다.
새 가구도 마찬가지였다. 표면은 반듯하고 깨끗했지만, 그 안쪽에는 접착제와 보드류와 스펀지와 도료가 들어 있었다. 아이 방 책상과 침대 옆에 놓인 가구도 겉으로는 완성된 물건이었지만, 속의 성분은 한동안 공기와 헤어지지 않았다.
문제는 어느 한 재료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새 아파트는 여러 재료가 한꺼번에 들어와 거실과 방마다 놓인 공간이었다. 벽지에서 나오는 냄새, 바닥재에서 나오는 냄새, 가구에서 나오는 냄새, 접착제와 페인트와 코팅재에서 나오는 냄새가 한 공간 안에 겹쳤다.
환기가 충분하지 않은 집에서는 그 냄새가 오래 머물렀다. 냄새는 재료가 공기 중으로 내보내는 화학물질의 흔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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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한 방송이 저가 소파를 해부했을 때, 기자는 내부 재료를 목재라고 불렀다. 그 안에는 합판도 있었고, 건설 현장에서 거푸집으로 쓰였던 폐자재도 있었다. 시멘트가 묻은 판재, 흙먼지와 곰팡이, 접착제와 스펀지가 한데 들어 있었다. 그런데 기사는 그것을 목재라는 말로 묶었다.
그 문장 안에서 목재와 합판, 폐목재와 가구용 판재는 비슷한 재료처럼 지나간다. 그러나 같은 뜻이 아니다. 원목은 나무 자체에 가깝다. 나무를 켜고 말려 쓰는 재료다. 물론 원목도 어떻게 건조했는지, 어떤 도장을 했는지, 어떤 접착이나 방부 처리를 했는지에 따라 성격이 달라진다.
합판과 MDF, 파티클보드는 다르다. 합판은 얇게 켠 단판을 접착제로 겹겹이 붙이고, MDF와 파티클보드는 목질 섬유나 나무 조각을 접착제와 수지로 다시 뭉쳐 압착한다. 모두 나무에서 출발할 수 있지만, 소비자가 물어야 할 질문은 달라진다. 어떤 접착제를 썼는가. 방출 등급은 어떤가. 표면에는 무엇을 발랐는가.
합판과 보드류를 탓하는 것이 아니다.
6·25 전쟁 이후 전 국토는 폐허였다. 나무는 땔감이 되었고, 집을 짓고 공장을 세우는 재료가 되었다. 산에서 나무가 사라지던 시절이었다. 민둥산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았고, 판잣집이라는 말은 그 시대의 가난한 주거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변변한 재료가 부족한 곳에서 사람들은 판재 한 장으로 벽을 세우고 지붕을 얹었다.
그 시절 합판과 보드류는 넓고 균일한 면재를 공급해 준 고마운 자재였다. 가구 생산과 실내 마감, 대량 주거 공급을 가능하게 한 재료이기도 했다. 라면이 쌀 부족 시대의 허기를 메워준 음식이었듯, 공업 목질재료도 민둥산과 주택난의 시대에 부족한 자재를 메워준 현실적 대안이었다.
목재를 다시 말하려면 먼저 목재라는 이름부터 정직해야 한다. 목재라는 말만으로 좋은 재료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나무를 썼는지, 어떻게 말렸는지, 무엇으로 붙였는지, 무엇을 발랐는지에 따라 목재의 성격도 달라진다.
사실 건축 재료가 사람에게 중요하다는 말은 낯선 주장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한옥을 떠올릴 때, 기와지붕의 곡선이나 마당만을 그리워하지 않는다. 나무 기둥과 서까래, 흙벽과 한지, 마루와 온돌이 만들어내는 냄새와 촉감, 온기와 습도의 차이를 함께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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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콘크리트 주거 비판을 대중적으로 제기한 '후나세 슌스케'의 일본어 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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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 주택에서는 9년 일찍 죽는다』의 저자 후나세 슌스케가 콘크리트 주거를 문제 삼은 것도 이 지점이었다. 그는 콘크리트 안에 어떤 성분이 들어 있는지만 묻지 않았다. 같은 온도의 방이라도 어떤 벽은 몸을 차갑게 만들고, 어떤 바닥은 오래 머물수록 긴장을 키운다. 차가운 표면이 몸의 열을 빼앗는 냉복사, 습도와 체감온도, 딱딱한 재료가 남기는 심리적 반응까지 그의 관심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그가 남긴 질문은 사라지지 않는다. 집은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라 사람이 오래 머무는 환경이다. 벽과 바닥과 천장은 사람의 몸과 마음에 어떤 흔적을 남기는가.
그의 논의에서 목재는 콘크리트의 반대편에 놓인다. 나무는 단지 보기 좋은 마감재가 아니었다. 산림청이 발간한 생활 속 목재 이용 자료도 비슷한 방향의 연구를 소개한다. 목재를 손으로 만졌을 때 과도한 뇌 활동은 낮아지고 부교감신경계 활동은 높아졌다. 편백나무와 대리석을 각각 맨발로 밟게 한 실험에서도 목재 쪽의 편안함은 더 높고 스트레스 지수는 더 낮게 나타났다.
문제는 합판과 보드류의 존재가 아니었다. 그 재료들은 각자의 시대와 쓰임이 있었다. 문제는 서로 다른 재료를 모두 목재라는 한 단어 안에 넣어버린 데 있었다. 그 순간 소비자가 물어야 할 질문도 흐려졌다. 어떤 나무를 썼는가. 무엇으로 붙였는가. 어떤 등급의 재료인가. 어떤 처리를 거쳤는가. 같은 일이 시멘트에서도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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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멘트라는 이름도 오래 비슷한 방식으로 쓰였다. 사람들은 시멘트를 돌가루와 물이 만나 굳는 재료 정도로 이해했다. 모래와 자갈과 섞이면 콘크리트가 되고, 철근과 함께 건물의 뼈대가 되는 재료라고 생각했다. 집의 표면은 벽지와 장판과 가구로 가려졌고, 그 안쪽의 시멘트와 콘크리트는 잘 보이지 않았다.
1999년을 전후해 시멘트의 의미는 달라졌다. 정부가 시멘트 소성로를 폐기물 처리 시설로 인정하면서부터였다. 폐타이어, 폐플라스틱, 소각재, 하수슬러지, 각종 산업폐기물은 그때부터 시멘트 원료와 연료의 이름으로 점점 더 자연스럽게 불리기 시작했다. 정부에는 폐기물을 처리할 길이었고, 업계에는 원료와 연료를 아낄 방법이었다. 누군가는 그것을 자원순환이라고 불렀고, 누군가는 윈윈이라고 불렀다.
집에 사는 사람의 입장에서 질문은 달라져야 했다. 그 시멘트는 무엇으로 만들어졌는가.
새집증후군이 벽지와 장판과 가구에서 시작된 공기의 문제였다면, 폐기물을 원료와 연료로 활용한 시멘트 논란은 그 질문을 집의 뼈대까지 끌고 갔다. 무엇을 발랐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으로 굳혔는가의 문제가 되었다. 겉으로는 같은 회색 가루였지만, 그 안에 무엇이 들어갔는지는 달랐다. 일부 환경단체와 비판자들이 이 문제를 이른바 ‘쓰레기 시멘트’ 논란으로 불렀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6가 크롬 화합물 문제가 제기된 것도 이 지점이었다. 발암성이 거론되어 온 물질이고, 피부와 호흡기를 통해 인체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시멘트 논란 때마다 반복적으로 등장했다. 물론 현재는 관련 기준과 저감 관리가 적용되고 있다. 그럼에도 질문은 남는다. 집의 뼈대가 되는 재료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가. 굳은 뒤에도 그것은 끝나지 않는다.
집은 완공되면 조용해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재료는 사라지지 않는다. 벽지와 장판의 냄새가 거실과 방의 공기로 올라왔듯, 시멘트와 콘크리트의 성분도 벽 속과 바닥 밑에만 머문다고 말할 수 없었다.
2010년대 후반 라돈 논란은 집 안 공기의 출처를 다시 묻게 했다. 2018년 이른바 ‘라돈 침대’ 사태 이후, 불안은 침대 매트리스에만 머물지 않았다. 일부 신축 아파트의 마감재와 실내 라돈 검출 논란으로 이어지면서, 문제는 다시 집 안으로 돌아왔다.
벽지와 장판의 냄새만 의심할 일이 아니었다. 바닥 밑, 벽 속, 콘크리트 구조체까지 실내공기와 무관하다고 말하기 어려워졌다. 시멘트는 굳었다고 해서 사람의 생활환경에서 그 영향이 완전히 사라지는 재료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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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기물 활용 시멘트 논란을 한국 주거환경 문제로 다룬 『대한민국 쓰레기 시멘트의 비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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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벽은 말이 없다. 그러나 몸은 먼저 안다. 보일러는 돌아가고, 실내 온도계는 적당한 숫자를 가리키는데도 벽 쪽에 앉으면 등이 식는다. 방 안의 공기는 데워져 있는데, 몸의 한쪽은 계속 차갑다.
그것은 단순한 기분이 아닐 수 있다. 사람은 실내 온도만으로 따뜻함을 느끼지 않는다. 벽과 바닥의 온도, 습도, 공기의 흐름, 재료의 감촉이 함께 몸의 감각을 만든다. 같은 온도의 방이라도 어떤 공간은 포근하고, 어떤 공간은 차갑다.
문제는 성분표에만 있지 않았다. 벽과 바닥과 천장이 사람의 몸에 남기는 감각, 그 방에서 자고 공부하고 자라는 아이들의 정서와 행동까지 질문의 대상이 되었다. 그가 붙잡은 질문은 쉽게 버릴 수 없다. 사람은 자신이 오래 머무는 공간의 재료와 완전히 무관하게 살 수 있는가. 집과 교실, 사무실의 벽과 바닥에 쓰인 자재는 사람의 몸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가.
이 책의 불편함은 학교로까지 들어간다는 데 있다. 저자는 콘크리트 학교와 목조 학교의 차이도 묻는다. 책에서 소개된 사례들에 따르면 콘크리트 학교와 목조 학교 사이에는 아이들의 두통, 복통, 정서적 불안 같은 문제를 둘러싼 논의가 있었다. 여기서 목조 학교는 낭만적 대안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아침부터 오후까지 앉아 있는 교실에서, 벽과 바닥과 천장의 재료가 어떤 하루를 만드는지 묻기 위한 비교 대상이다.
물론 학교폭력은 한 가지 원인으로 설명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가정, 교육제도, 경쟁 구조, 또래문화, 디지털 환경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러나 아이들이 하루 대부분을 앉아 있는 교실의 벽과 바닥, 공기와 온열감이 아이들의 기분과 행동에 어떤 배경이 되는지는 충분히 물어볼 수 있다.
한국에서는 학교폭력 문제가 대입에까지 영향을 줄 만큼 커졌다. 그럼에도 우리는 교실을 성적과 통제와 관리의 공간으로는 자주 말했지만, 아이들의 몸과 감각을 품는 재료의 공간으로는 충분히 말하지 않았다.
후나세의 책이 주목한 것은 결국 생활공간을 만드는 건축재료의 문제였다. 콘크리트는 건축 재료인 동시에 사람이 자고, 공부하고, 회복하는 환경이었다. 그러나 한국의 주택 시장에서 이 문제는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아파트 디자인은 더 화려해졌고, 브랜드는 더 고급스러워졌다. 분양 광고와 홍보 문구는 입지와 조망, 커뮤니티 시설과 브랜드를 앞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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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는 콘크리트 주택과 실내공기 문제가 실제 사회적 논쟁으로 번졌다. 새집증후군은 시크하우스(シックハウス) 증후군이라는 이름으로 이야기됐고, 학교 공간으로 번지면서 시크스쿨(シックスクール) 문제로도 확장됐다. 목조주택이 여전히 생활 가까이에 남아 있는 사회에서, 콘크리트 집과 목조주택, 집의 재료와 건강, 학교와 병원 같은 공공공간, 아이들의 심리와 행동은 언론과 출판의 주제가 되었다.
한국에도 책은 들어왔다. 후나세의 책은 『콘크리트 주택에서는 9년 일찍 죽는다』라는 원제 그대로 국내에 소개됐고, 훗날 출판사 마티에서 『콘크리트의 역습』이라는 제목으로 다시 나왔다. 그러나 한국의 모델하우스 풍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여전히 분양가와 입지, 브랜드와 조망을 먼저 물었다. 벽지와 바닥재, 붙박이장과 문짝, 시멘트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를 묻는 일은 낯선 일이었다.
식품첨가물 논쟁과 비교하면 차이는 더 또렷해진다. 사람들은 라면 봉지와 과자 포장지 뒷면을 읽기 시작했지만, 집을 보러 가서는 그 집의 성분표를 묻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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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든 건물 증후군을 사회적·과학적 불확실성의 문제로 분석한 미셸 머피의 저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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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유럽에서는 이 문제가 다른 이름으로 다뤄졌다. 밀폐된 건물 안에서 두통, 피로, 집중력 저하 같은 증상이 나타나는 현상을 병든 건물 증후군이라고 불렀다. 미국의 연구자 미셸 머피는 『Sick Building Syndrome and the Problem of Uncertainty』에서 병든 건물 증후군을 단순한 환기 문제가 아니라, 실내 화학물질 노출과 직장 환경, 과학적 불확실성이 얽힌 문제로 다뤘다. 합성 카펫과 잉크, 접착제와 용제에서 나오는 실내 화학물질은 더 이상 사소한 냄새로만 여겨지지 않았다.
이 말과 함께 실내공기질, 라돈, 휘발성유기화합물 같은 단어들이 연구 논문과 행정 문서, 직장 안전 매뉴얼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집과 사무실과 학교는 더 이상 비와 바람을 막는 껍데기로만 이해되지 않았다. 밀폐된 실내공간, 환기 장치, 곰팡이, 접착제, 가구, 바닥재, 건축자재가 사람의 몸과 마음에 영향을 주는 환경으로 다뤄졌다.
병든 건물 증후군이라는 이름이 붙자, 두통과 피로, 환기와 곰팡이, 접착제와 건축자재는 더 이상 개인의 예민함으로만 치부되지 않았다. 건물 안에서 오래 머무는 사람의 건강 문제로 다뤄지기 시작했다.
남의 나라 이야기만도 아니었다. 한국에서도 2010년대 후반 이후 새로 지은 대형 건물로 입주한 뒤 냄새와 두통, 눈 따가움과 호흡기 불편을 호소하는 사례가 반복됐다. 아모레퍼시픽 신사옥을 둘러싼 르포 기사에서는 “마스크 없이는 못 버틴다”는 증언이 나왔고, 현대중공업그룹 신사옥 입주 뒤에도 직원들이 새집증후군을 호소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집과 사무실, 학교와 신사옥은 서로 다른 공간처럼 보이지만, 사람이 오래 머문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한국에도 이름은 있었다. 새집증후군, 폐기물을 원료와 연료로 활용한 시멘트 논란, 라돈, 콘크리트의 역습. 그러나 이 단어들은 하나의 질문으로 잘 이어지지 못했다. 새집증후군은 환기와 베이크아웃의 문제로 다뤄졌고, 폐기물 활용 시멘트 문제는 일부 환경단체의 문제 제기로 남았고, 라돈은 특정 아파트 단지의 민원처럼 보도됐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놀랐지만, 모델하우스에서 묻는 질문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벽지와 바닥재, 보드류와 시멘트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를 확인하는 일은 여전히 낯선 일이었다.
한국 아파트의 하자 문제는 이미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균열과 누수, 들뜬 바닥과 마감 불량을 고발하는 사진과 영상은 넘쳐난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하자는 어쩌면 다행인 편이다.
휘발성유기화합물은 사진에 찍히지 않는다. 라돈은 벽지처럼 뜯겨 나오지 않는다. 콘크리트와 접착제, 바닥재와 가구에서 새어 나오는 성분은 균열처럼 선을 그어 드러나지 않는다. 사람은 냄새와 두통, 눈 따가움과 아이의 가려움으로 뒤늦게 알아차릴 뿐이다. 집의 하자는 눈으로만 확인되는 것이 아니었다.
집을 자산으로 배운 사회에서 재료는 뒤로 밀렸다. 가격은 매일 숫자로 확인됐지만, 벽과 바닥과 시멘트와 가구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는 숫자가 되지 못했다. 사람들은 집값의 상승과 하락에는 민감해졌지만, 집 안의 공기와 재료에는 오래 둔감했다.
새집증후군. 폐기물 활용 시멘트 논란. 라돈. 콘크리트의 역습.
우리는 이 단어들을 서로 다른 사건처럼 지나쳐왔다. 그러나 그때마다 같은 질문 앞에 서 있었다.
벽지와 바닥재, 가구와 시멘트.
내가 머무는 공간은 무엇으로 지어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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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켜고, 깎고, 다듬는 건 익숙한데 글은 쓸 때마다 골치 아픈 우드코디BJ입니다.
그래도 나무를 좋아하고, 목재를 좋아하실 여러분과 소통하고 싶어 오늘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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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목재소는 현재 김포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꼭 나무를 찾으러 오시는 것이 아니더라도 괜찮습니다.
언제든지 편하게 방문해 주시면, 저희가 성심껏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의 방문을 언제나 환영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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