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이야기는 회사에서 실제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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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이 지난 오후, 총무관리과에서 대리급 이하 직원들을 회의실로 불렀다. 영업부에서 견적과 단가 업무를 맡고 있는 입사 3년 차 박 기사가 회의실에 들어섰을 때, 직원들은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유는 곧 드러났다. 라이프동 외부 남자 화장실 휴지통에서 발견된 한 뭉텅이의 종이 타월 때문이었다.
매일 오전 9시쯤, 공장 환경미화를 담당하는 황 여사님이 그 화장실 휴지통을 비운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다. 휴지통을 비운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젖은 종이 타월 한 뭉텅이가 다시 버려져 있었다고 했다. 족히 스무 장은 되어 보였다고 한다.
목격자는 없었다. 사용자를 특정할 수도 없었다. 그 화장실은 직원과 외부 방문객이 함께 쓰는 공간이었다. 비가 오던 날이었으니 누군가 옷에 묻은 빗물을 닦았을 수도 있다. 오가던 화물차 바닥이나 적재물에 묻은 물기를 닦는 데 쓰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짐작이었다.
회의실 공기에는 묘한 정적이 있었다. 직장 생활을 시작한 지 오래되지 않은 직원들 입장에서는, 마음 한쪽에 작은 의문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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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지 좀 많이 쓴 일로 사람들을 이렇게 모아야 하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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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생각이 회의실 안에서 말로 나오기도 전에, 총무관리과 부장님이 먼저 그 지점을 꺼냈다.
"여러분 중 누구라도 휴지 좀 많이 쓴 일로 업무 시간에 이렇게까지 모여 이야기해야 하나 싶을 수 있습니다. 나도 여러분 정도 나이였을 때는 그렇게 생각했으니 충분히 이해합니다."
총무관리과 부장님은 평소에도 종종 마주치기는 했지만, 먼저 살갑게 말을 건네는 사람은 아니었다. 표정도 조금 무뚝뚝한 편이었고, 전 직원이 모이는 월례회의에서도 앞으로 나서 발언하는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박 기사에게는 부장님이 직원들의 속마음을 먼저 짚어낸 그 순간이 조금 의외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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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 말이 중요했다.
"하지만 이 일을 단순히 ‘상사에게 혼났다’로만 받아들이면, 사회인으로 성장해 가는 여러분에게는 오히려 손해입니다. 그 점은 꼭 짚고 넘어가고 싶습니다."
부장님의 이야기는 원가로 이어졌다. 커피숍을 예로 들었다. 커피콩 값만 원가가 아니라고 했다. 컵, 냅킨, 전기세, 수도세, 심지어 화장실 휴지까지 모두 비용에 들어간다고 했다. 손님이 냅킨이나 종이 타월을 필요 이상으로 많이 쓰면, 그것도 결국 가게의 수익을 깎는 비용이 된다는 설명이었다.
회사도 다르지 않다고 했다. 목재 제품을 만드는 회사라고 해서 비용이 원목과 가공비에만 머무는 것은 아니다. 전기, 수도, 청소, 비품, 시설 관리비도 모두 회사가 운영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다. 그런 비용이 쌓이면 제품 가격에도 영향을 줄 수 있고, 가격이 올라가면 경쟁력도 흔들릴 수 있다.
견적과 단가를 보는 박 기사에게 가격과 경쟁력은 매일 마주하는 말이었다. 다만 그 말들이 화장실 종이 타월 한 장과 이어질 줄은 몰랐다.
부장님은 회사 안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회계적 사고의 기본을 익히는 일도 현장에서 실무를 배우는 일만큼 중요하다고 했다. 그가 말한 회계적 사고는 회계학 지식을 외우라는 뜻이 아니었다. 회사가 어디에서 비용을 쓰고, 어떻게 수익을 내며, 그 둘이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살펴보는 눈에 가까웠다.
종이 타월 한 장이 곧바로 회사의 운명을 바꾸지는 않는다. 하지만 작은 낭비를 아무도 비용으로 보지 않기 시작하면, 그것은 습관이 되고 문화가 된다. 부서마다 비용 절감 표어가 붙어 있어도, 비용의 누수는 이렇게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금씩 생긴다.
부장님은 이번 일을 단순히 종이 타월을 아끼라는 지적으로만 받아들이지 말고, 비용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로 삼아 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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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실을 나선 박 기사는 막상 혼난 것 같은 기분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완전히 납득했다고 말하기도 어려웠다. 그 중간 어디쯤이었다. 분명히 종이 타월이 한꺼번에 버려진 일 때문에 불려 갔는데, 듣고 나온 것은 원가 이야기였다.
머릿속에는 ‘회계적 사고’라는 말이 빙빙 돌았다. 그 말은 숫자를 계산하는 기술만 뜻하지 않았다. 커피콩만 원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컵과 냅킨, 전기세와 수도세, 화장실 휴지까지 함께 보는 눈이었다. 회사가 굴러가기 위해 쓰이는 모든 것을 비용과 수익의 흐름 안에서 감각하는 일이었다.
화장실 종이 타월 앞에서 그런 말을 떠올리게 될 줄은 몰랐다. 영업부 사무실로 돌아가던 박 기사는 잠시 방향을 틀어, 문제가 된 화장실에 들렀다. 거울 옆 종이 타월함 앞에는 이미 안내문이 하나 붙어 있었다. 파란 모자를 쓴 캐릭터가 종이 한 장을 들고 있었다. 말풍선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한 장이면 충분해요!’
뜻은 분명했다. 종이 타월을 필요 이상으로 많이 쓰지 말자는 메시지였다. 누가 보아도 한눈에 알 수 있었고, 행동도 분명하게 요청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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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존 안내문은 사용량을 줄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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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직원들은 다시 모였다. 이번에는 종이 타월함에 붙일 새 안내 문구를 상의하기 위해서였다. 처음 방향은 전날 부장님이 말한 원가 감각을 안내문 문구로 옮기는 것이었다. 종이 타월 한 장도 시설과 비품 비용이고, 그런 비용이 쌓이면 제조 원가와 판매 단가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고객에게 조금이라도 합리적인 가격으로 제품을 제공하려면 작은 비용도 허투루 보아서는 안 된다. 논리는 분명했다.
‘시설과 비품도 제품을 만드는 비용입니다.’, ‘작은 절약이 합리적인 제품 가격으로 이어집니다.’
직원들에게는 설득력 있는 말이었다. 전날 부장님이 말한 내용과도 맞닿아 있었다. 하지만 막상 그 문장을 화장실 벽에 붙일 안내문으로 생각해 보니 어딘가 걸렸다.
그 화장실은 직원만 쓰는 곳이 아니었다. 손님과 외부 방문객도 함께 쓰는 공간이었다. 직원에게는 원가 관리라는 말이 교육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손님에게는 자칫 "우리 회사 비용 아끼는 데 동참해 주세요"라는 말처럼 들릴 수도 있었다.
말은 맞는데, 자리가 맞지 않았다.
‘한 장이면 충분해요’라는 문장도 다시 보게 됐다. 손에 묻은 물기만 가볍게 닦는 사람에게는 한 장이면 충분할 수 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한 장이 부족할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양을 미리 정해놓는 말은, 의도와 달리 회사 입장 중심으로 들릴 여지가 있었다.
회의가 잠시 겉돌던 그때, 실장님이 말했다.
"우리 회사가 다루는 목재도 숲에서 왔고, 종이 타월도 숲에서 왔지."
딱히 선언적인 어조는 아니었다. 회의를 정리하려는 말처럼 들리지도 않았다. 그냥 생각이 입 밖으로 나온 것 같았다. 그런데 그 한마디가 회의의 방향을 바꾸었다.
원가에서 숲으로. 논리에서 뿌리로.
목재를 다루는 회사가 종이 타월 절약을 이야기할 때 가장 자연스럽게 꺼낼 수 있는 언어는 원가만이 아니었다. 숲이었다. 목재도 그 숲에서 왔고, 눈앞의 종이 타월도 그 숲에서 왔다. 그것을 알뜰히 쓰는 일은 회사 비용의 문제이기 전에, 어디에서 왔는지를 아는 사람의 태도였다.
문구는 이렇게 정해졌다.
나무는 탄소를 품고 산소를 내어줍니다.
그 숲에서 목재도, 이 종이 타월도 왔습니다.
지구가 더워지는 지금,
목재를 더 알뜰히 쓰는 방법은 유림이 고민하겠습니다.
종이를 필요한 만큼 쓰는 일은 우리 모두의 몫입니다.
며칠 뒤 박 기사는 그 화장실 앞을 지나다 걸음을 잠깐 멈췄다. 종이 타월함 위에 새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수채화풍 삽화 위로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나무 아래 왼쪽에는 판재가, 오른쪽에는 종이 타월이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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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 안내문은 종이 타월이 숲에서 왔다는 점을 먼저 전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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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이면 충분해요!’라는 문장은 없었다. 몇 장이든 써도 좋다는 말도 없었다. 대신 이 종이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먼저 생각하게 했다. 그리고 회사가 먼저 자기 몫을 말했다. 목재를 더 알뜰히 쓰는 방법은 목재 회사가 고민하겠다고 했다. 그다음 종이를 필요한 만큼 쓰는 일은 우리 모두의 몫이라고 했다.
그 순서가 마음에 남았다. 회사가 자기 몫은 말하지 않고 사용자에게만 절약을 요구하면, 아무리 좋은 말도 잔소리가 되기 쉽다. 그러나 회사가 먼저 자기 책임을 말하면, 뒤따르는 부탁은 조금 다르게 들린다. 그것은 지시가 아니라 함께 나누는 약속에 가까워진다.
박 기사는 안내문 앞을 지나며 이틀 전 회의실에 들어갈 때 떠올렸던 질문을 다시 생각했다. 휴지 좀 많이 쓴 일로 사람들을 이렇게 모을 필요가 있을까 했던 그 질문.
부장님이 말한 회계적 사고와 실장님이 던진 숲 이야기는 처음엔 전혀 다른 언어처럼 들렸다. 그런데 새 안내문 앞에서 박 기사는 알았다. 종이 타월 한 장은 더 이상 쓰고 버릴 종이 한 장으로만 보이지 않았다. 그 뒤로 회사의 비용 구조가 보였고, 그 너머로 숲에서 온 자원의 시간이 보였다.
그날 휴지통에서 발견된 종이 타월 뭉텅이는 이미 사라졌을 것이다. 황 여사님이 치웠고, 휴지통은 다시 비워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 자리에는, 처음보다 더 깊은 고민을 지나온 문장이 붙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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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켜고, 깎고, 다듬는 건 익숙한데 글은 쓸 때마다 골치 아픈 우드코디BJ입니다.
그래도 나무를 좋아하고, 목재를 좋아하실 여러분과 소통하고 싶어 오늘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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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목재소는 현재 김포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꼭 나무를 찾으러 오시는 것이 아니더라도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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