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10여 년 만에 휴무일 당직을 섰다. 오래 일하다 보면 직접 전화기를 붙잡고 앉아 있는 일이 점점 줄어든다. 회사로 걸려온 목재 문의 전화는 대개 실무 담당 직원들이 먼저 받고, 중간 관리자는 그 뒤에서 판단하거나 조율하는 일이 많아진다. 어느덧 내가 하는 업무도 그런 쪽에 가까워져 있었다. 다시 휴무일 전화기 앞에 앉으니, 예전에는 그렇게나 익숙했던 일인데도 조금 낯설게 느껴졌다.
그날 걸려온 문의 전화 중 한 통은 스페이스월에 관한 것이었다. 매장 벽면에 홈을 내 상품을 걸거나 진열할 때 쓰는 목재 패널이다. 또 다른 문의는 방부목이었다. 야외 데크나 울타리, 조경 시설물에 쓰이는 목재다. 고객 입장에서는 둘 다 당연히 나무로 된 것, 적어도 나무와 관련된 제품으로 보였을 것이다. 인터넷에서 ‘목재회사’를 검색했을 때 ‘○○목재’라는 상호가 보였다면, 그 옆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건 일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업계 안으로 들어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고객에게는 둘 다 목재지만, 유통 현장에서는 서로 다른 경로로 움직이는 품목이다. 전화를 끊고 나자, 어쩌면 온라인 시대에는 ‘○○목재’나 ‘△△우드’라는 상호 자체가 소비자에게 생각보다 불친절한 이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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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객의 언어와 업계의 언어 사이, 전화기 앞에서 메모를 남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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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국내에는 상호에 ‘목재’나 ‘우드’가 들어간 목재회사가 많다. 이름만 보면 모두 비슷한 품목을 취급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 다루는 품목은 생각보다 많이 다르다. 어떤 회사는 원목을 켜고, 어떤 회사는 구조재를 수입한다. 어떤 회사는 데크재와 방부목을 다루고, 어떤 회사는 다루끼와 각재를 현장에 납품한다. 합판과 MDF 같은 판재류를 주로 다루는 곳도 있고, 마루와 몰딩 같은 인테리어 마감재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회사도 있다.
업계 안에 있으면 이런 구분은 익숙하다. 하지만 일반인 입장에서 보면 모두 목재 관련 품목일 뿐이다. 예전에는 이 문제가 지금처럼 크게 드러나지 않았다. 예전 목재회사의 거래는 대체로 기업 간 거래에 가까웠고, 일반인이 목재회사에 직접 연락하는 일은 지금보다 적었다. 일반인과 목재회사 사이에는 가교 역할을 하는 업종들이 있었다.
대표적인 곳이 동네 목공소였다. 예전에는 웬만한 동네마다 목공소 하나쯤은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금속을 다루는 철공소도 있었지만, 금속은 장비도 기술도 부담이 더 컸다. 규모가 크거나 특정 지역에 모여 있는 경우도 많았다. 반면 목공소는 훨씬 일상 가까이에 있었다. 작은 선반, 문짝 수리, 장롱 보수, 가게 집기, 간단한 목재 가공 같은 일들이 동네 목공소를 거쳐 갔다.
그보다 덜 흔했지만 공예사, 건구사, 문짝집도 있었다. 그들은 목재회사와 소비자 사이를 생활 가까이에서 이어주는 사람들이었다. 손님이 “나무판이 필요하다”라고 말하면, 그 말이 합판인지, 집성판인지, MDF인지, 각재인지 어느 정도 걸러낼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필요한 품목에 따라 어떤 목재회사를 찾아가야 하는지도 알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고정 거래처가 있었다. 목재회사 입장에서는 그들이 단골이었다. 일반 소비자는 목재회사를 직접 몰라도 큰 문제가 없었다. 목공소 사장이나 목수, 건구사 사장, 문짝집 직원이 그 사이를 이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들은 단순한 중간 거래자가 아니었다. 생활의 언어를 업계의 언어로 바꿔주는 통역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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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님의 막연한 말을 듣고 필요한 품목과 거래처를 짚어주던 사람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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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지금은 그 통역사들이 많이 사라졌다. 이제 동네 목공소를 찾는 일은 예전처럼 쉽지 않다. 문짝집이나 건구사도 생활권에서 멀어졌다. 일부는 공방, 주문가구 업체, 인테리어 제작소 같은 형태로 바뀌었지만, 예전처럼 동네마다 자연스럽게 보이던 생활형 목공소의 자리는 크게 줄었다.
문제는 고객과 목재회사를 이어주던 가교는 사라졌는데, 목재 산업의 구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제재소는 여전히 제재소의 언어로 움직인다. 판재류를 다루는 회사는 판재류의 언어로 움직인다. 구조재 전문 회사는 목조주택과 공학목재의 언어를 쓴다. 다루끼와 각재를 납품하는 자재상은 현장 규격과 묶음 단위와 배송의 언어로 움직인다. 마루와 몰딩 회사는 시공과 샘플북과 인테리어 마감재의 언어로 말한다.
그런데 고객은 이제 그 복잡한 구조를 거치지 않고 곧장 목재회사에 닿는다. 고객이 무지해서가 아니다. 예전에는 누군가 길을 잡아주고 다리를 놓아주었다. 이제는 고객이 혼자 그 길을 찾아 건너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스페이스월과 방부목을 묻는 두 통의 전화는 예전에는 누군가 대신 걸러주던 일을 이제 고객이 직접 떠안고 있는 장면처럼 느껴졌다. 휴무일 전화기 너머에서 고객은 자신이 아는 말로 목재를 찾고 있었다. 업계 안에서 쓰는 말로 그 문의가 어디에 속하는지 가늠하고 있었다. 그 사이에 틈이 있었다.
그날은 그 틈을 조금이라도 줄여보고 싶었다. 스페이스월과 방부목은 취급하지 않는 품목이라고 안내드렸다. 하지만 거기서 곧바로 전화를 끊지는 않았다. 우선 인터넷에서 찾으시는 품목명을 키워드로 다시 검색해 보시길 권해드렸다. 그리고 우리 회사가 어떤 목재를 생산하는 곳인지, 온라인에서 어떤 자료와 시공 사례를 볼 수 있는지 간단히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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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고객은 “언제 김포 근방에 갈 일이 있으면 들르겠다”라고 했다. 당장 거래가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잘못 걸려온 전화처럼 보였던 문의가, 고객에게 우리 회사를 떠올릴 작은 계기 하나는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 고객과의 통화는 조금 더 이어졌다. 몇 마디를 더 나누자 대화의 결이 달라졌다. 알고 보니 그는 원목가구도 만드는 사람이었다. 그러면서 요즘 가격이 좋고 잘 나가는 수종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가 처음 두드린 문이 자신이 찾던 품목으로 곧장 이어지는 문은 아니었지만, 대화는 어느새 우리가 잘 아는 원목의 영역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통화만으로는 설명할 내용이 너무 많았다. 괜찮으시다면 관련 자료를 문자로 보내드리겠다고 말씀드렸다. 고객은 흔쾌히 받아들였고, 오히려 고맙다고 했다. 전화를 끊은 뒤 통화 내용을 정리해 영업부 담당 직원에게 전달했다. 담당 직원은 회사 소개와 실제 시공 사례를 볼 수 있는 온라인 자료를 자신의 명함 이미지와 함께 고객에게 보냈다.
처음에는 그저 미취급 품목 문의 전화처럼 보였다. 평소라면 “죄송합니다. 저희는 문의하신 품목을 취급하지 않습니다”라는 말로 끝났을 수도 있는 전화였다. 그러나 그 전화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고객은 목재와 무관한 사람이 아니었다. 다만 그가 처음 두드린 곳이, 자신이 찾던 품목을 취급하지 않는 목재회사의 문이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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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객의 말을 업계의 언어로 옮기는 법, 그 이유를 직원들과 나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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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 이 경험을 혼자 간직하는 데서 그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목재 문의 전화를 받는 직원들과 휴무일 당직 근무자들에게도, 왜 이런 문의에 조금 더 친절한 안내가 필요한지 전하고 싶었다.
마침 신입 및 저연차 직원들의 온보딩 프로그램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래서 교육 일정을 조정해, 고객 문의가 목재업계 안에서 어떻게 서로 다른 품목군으로 갈라지는지, 또 왜 그렇게 나뉘는지 설명했다. 하지만 그 교육에서 정말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품목 암기가 아니었다.
핵심은 우리가 취급하지 않는 품목 문의라고 해서 “저희는 취급하지 않습니다”라고 정중하게 말씀드리고 전화를 끊으면 그만인 일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오래전부터 굳어온 목재업계의 구조를 우리 회사 하나가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다. 그렇다고 고객이 목재회사의 문턱에서 느끼는 막막함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도 없다.
고객이 그 차이를 처음부터 알기는 어렵다. 목재업계 안의 구분이 외부 사람에게 잘 보이지 않는다면, 그 구분을 조금 더 친절히 설명하는 일은 업계 안에 있는 사람들의 몫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손님의 막연한 말을 듣고 필요한 품목과 거래처를 짚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제 그 자리는 많이 비었다. 그 빈자리에 검색창이 들어왔다. 검색창은 연결을 빠르게 할 뿐, 목재의 세계를 충분히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그래서 전화 한 통이 더 중요해졌는지도 모른다. 잘못 걸려온 전화처럼 보였던 문의도, 누군가에게는 목재의 세계로 들어오는 첫 문일 수 있다. 우리가 모든 문을 열어줄 수는 없다. 다만 적어도 우리가 어떤 문인지, 그 문 뒤에 무엇이 있는지는 친절하게 들려줄 수 있어야 한다.
10여 년 만의 휴무일 당직은 그 사실을 다시 가르쳐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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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켜고, 깎고, 다듬는 건 익숙한데 글은 쓸 때마다 골치 아픈 우드코디BJ입니다.
그래도 나무를 좋아하고, 목재를 좋아하실 여러분과 소통하고 싶어 오늘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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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목재소는 현재 김포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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