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인데 초여름 같은 더위였습니다. 한낮 기온은 27도에 가까웠습니다. 산 정상 정자에 앉아 숨을 고르고 있었습니다. 정상석 옆에서는 십수 명의 등산객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습니다. 그때 바람이 한 번 세게 불었습니다. 키 큰 소나무 가지에서 샛노란 가루가 한꺼번에 터져 나왔습니다. 송홧가루였습니다. 사진을 찍던 사람들은 웃음 반 비명 반으로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누군가는 뒤로 물러섰고, 누군가는 황급히 마스크를 꺼냈습니다.
봄 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날의 노란 가루는 단순한 계절의 풍경이 아니었습니다. 봄이 빨라지고 있다는 신호였습니다. 산림청 국립수목원 분석에 따르면 2010년 이후 소나무 화분, 곧 송홧가루가 날리기 시작하는 시기는 전국 평균으로 해마다 약 0.91일씩 앞당겨지고 있습니다. 봄의 달력이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앞당겨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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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낮의 볕 아래, 목재 정자는 숲이 사람에게 내어준 쉼터처럼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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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이 되면 우리는 식목일을 떠올립니다. 한때 4월 5일은 나무를 심는 날이었습니다. 학교와 관공서와 기업이 산으로 올라가 묘목을 심었고, 식목일은 달력 속 봄의 의식처럼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 질문을 다시 꺼낼 때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식목일을 단순히 나무 심는 날로만 기억해도 되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식목일은 낭만적인 자연 기념일로 출발한 날이 아니었습니다. 한국의 식목일에는 민둥산의 기억이 깔려 있습니다. 한반도는 본래 산과 숲이 많은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일제 수탈과 전쟁, 생계형 벌채가 겹치며 한반도의 산은 빠르게 헐벗었습니다. 일제강점기 압록강과 두만강 유역의 삼림 수탈, 통감부와 조선총독부의 산림 통제, 한국전쟁 이후 땔감 채취와 화전은 한국 산림을 깊이 훼손했습니다. 식목일은 그런 국토를 다시 일으키려는 약속이었습니다.
식목일의 제도사도 그 절박함을 보여줍니다. 식목일은 1949년 공휴일로 지정되었고, 이후 ‘사방의 날’로 바뀌었다가 다시 4월 5일 식목일로 돌아왔습니다. 1982년에는 법정기념일로 제정되었으며, 2006년부터 공휴일에서는 제외되었습니다. 식목일은 단순히 쉬는 날이 아니었습니다. 헐벗은 산을 다시 푸르게 만들겠다는 시대의 국가적 의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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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0년대 공무원들의 식목일, 나무심는 모습 (사진출처 : 신동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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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그 일에 성공했습니다. 1973년 정부는 제1차 치산녹화 10개년 계획을 세웠습니다. 목표는 10년 동안 100만㏊에 21억 그루의 나무를 심는 것이었습니다. 이 계획은 1978년 당초 목표였던 100만㏊를 넘어 108만㏊의 녹화사업을 달성하며 계획기간을 4년 앞당겼습니다. 민둥산을 푸르게 만든 일은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성취였습니다.
산업화와 도시화의 그늘에 가려져 있지만, 산림녹화는 숨겨진 성취였습니다. 가난과 전쟁의 폐허에서 이 나라가 스스로 만들어낸 사회적 자산이었습니다. 헐벗은 산을 푸르게 바꾼 경험은 대한민국이 가진 중요한 역사적 자산입니다.
다만 그 성공에는 당시의 조건이 새겨져 있습니다. 1960~70년대의 급한 과제는 좋은 목재를 생산하는 숲을 정교하게 설계하는 것보다, 일단 헐벗은 산을 빨리 덮고 토사 유출을 막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리기다소나무, 아까시나무 같은 녹화수종과 사방수종이 많이 심겼습니다. 그 나무들은 그 시대에 필요한 나무였습니다. 척박한 산에 뿌리를 내리고, 흙을 붙잡고, 빠르게 산을 푸르게 만드는 일이 우선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나무들은 시대의 과제를 해결했습니다. 다만 민둥산을 빨리 덮기 위해 만든 숲과, 기후위기 시대에 탄소를 붙잡고 산불을 견디며 목재로 오래 쓰일 숲은 같은 모습일 수 없습니다. 푸른 산이 곧 건강한 숲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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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년대 초 민둥산이던 모습, 산림녹화 이전과 이후 변한 모습. (사진출처 : 산림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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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의 경고는 이미 숫자로 남아 있습니다. 2023년부터 2025년까지의 지구는 관측 사상 가장 더운 3년이었습니다. 이 3년의 평균기온은 산업화 이전보다 약 1.48도 높았습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2024년과 2023년 한반도 연평균 기온은 각각 역대 1위와 2위를 기록했습니다. 더워진 것은 공기만이 아니었습니다. 지난 57년 동안 우리나라 주변 바다의 표층 수온은 1.58도 올랐고, 동해는 2.04도 올랐습니다.
바다가 데워지자 어종 지도가 흔들렸습니다. 한때 동해를 대표하던 명태는 우리 바다에서 거의 보기 어려운 생선이 되었고, 오징어도 예전처럼 만만한 반찬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산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한국에만 자생하는 구상나무는 한라산과 지리산에서 집단 고사를 겪고 있습니다. 바다에서는 익숙한 생선이 줄고, 산에서는 토종 침엽수가 말라가고 있습니다. 기후위기는 먼 나라의 재난이 아니라 우리가 알던 풍경이 하나씩 지워지는 일입니다.
더 큰 문제는, 이 변화가 이제 시작에 불과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세계기상기구는 2025년부터 2029년까지 전 지구 평균기온이 해마다 산업화 이전보다 1.2도에서 1.9도 높은 범위에 머물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이미 달라진 바다와 산이 이 정도의 경고를 보내고 있다면, 더 뜨거워질 세계에서 다음에 지워질 풍경은 무엇일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산이 푸르다고 해서 모두 건강한 숲이라고 말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숲은 빽빽해졌고, 나무는 늙어가고 있으며, 산림은 점점 더 큰 산불의 위험에 노출되고 있습니다. 더구나 기후위기로 봄은 빨라지고, 건조한 날은 길어지고, 강한 바람은 산불을 재난으로 키우고 있습니다. 과거의 산림정책이 ‘비어 있는 산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의 문제였다면, 지금의 산림정책은 ‘이미 가득 찬 숲을 어떻게 건강하게 순환시킬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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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베리아 크라스노야르스크 산불 현장, 기후위기의 단면 (사진출처 : 환경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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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을 두고 특정 수종 하나만 탓할 수는 없습니다. 소나무가 많아서 산불이 난다고 말하는 것은 지나친 단정입니다. 기후위기, 건조한 날씨, 강풍, 산림의 밀도, 숲의 구조, 사람의 부주의가 함께 작용합니다. 다만 단순하고 빽빽한 숲이 큰불에 취약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산불에 강한 숲은 자연히 생기지 않습니다. 숲도 설계와 관리가 필요합니다. 어떤 곳은 솎아내야 하고, 어떤 곳은 수종을 바꿔야 하며, 어떤 곳은 불이 번지는 길목을 끊어야 합니다. 빽빽한 숲을 적절히 솎아 햇빛과 바람이 통하게 하고, 불에 상대적으로 강한 활엽수와 혼효림을 늘리는 일도 그 관리에 포함됩니다. 나무를 심는 일만큼이나, 나무를 어떻게 키우고 또 어떻게 거둘 것인지가 중요해졌습니다.
여기서 식목일의 다음 의미가 열립니다. 민둥산의 시대에는 나무를 심는 일이 곧 애국이었습니다. 그러나 기후위기의 시대에는 무조건 많이 심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나무는 자라는 동안 대기 중 탄소를 붙잡아 줄기와 가지에 저장합니다. 하지만 산불로 타버리거나, 고사해 썩거나, 짧게 쓰이고 버려지면 그 탄소는 다시 대기 중으로 돌아갑니다. 나무를 심는 일은 출발점일 뿐입니다. 나무를 키우고, 적기에 이용하고, 오래 쓰고, 다시 심는 순환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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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임 있는 수확은 숲의 끝이 아니라, 숲의 순환을 이어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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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재를 바라보는 시각도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는 흔히 나무를 베는 일을 숲을 해치는 일로만 생각합니다. 물론 무분별한 벌채는 산림 파괴입니다. 불법 벌채와 열대림 훼손은 기후위기를 악화시키는 명백한 문제입니다. 그러나 지속가능하게 관리되는 숲에서 적기에 수확한 목재를 건축재, 가구재, 내장재처럼 오래 사용하는 일은 다릅니다. 그것은 숲이 흡수한 탄소를 도시와 생활공간에 오래 저장하는 방식입니다.
물론 모든 숲이 생산림이 될 수는 없습니다. 생태적 보전이 우선인 숲, 인간의 개입을 줄여야 하는 숲, 재해 예방을 위해 구조를 개선해야 하는 숲은 서로 다르게 다뤄져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숲을 하나의 방식으로만 대하지 않는 일입니다. 보전할 숲은 보전하고, 관리할 숲은 관리하며, 이용할 숲은 책임 있게 이용해야 합니다.
오래 쓴다는 말도 단순히 소비를 늘리자는 뜻은 아닙니다. 잘 자란 나무를 거두어 건축재와 가구, 내장재처럼 수십 년 쓰이는 목제품으로 남기고, 그 자리에 다시 나무를 심고 가꾸는 일입니다. 식목일의 의미도 이제 조림의 시대에서 산림경영의 시대로 옮겨가야 합니다. 민둥산을 푸르게 만드는 일이 과거의 과제였다면, 기후위기 속에서는 숲이 내어준 자원을 오래 쓰고, 그 자리에 다시 나무가 자라게 하는 일이 다음 과제입니다.
국내 산림을 건강하게 순환시키려면 국산 목재의 활용 기반도 필요합니다. 다만 목재의 가치는 국산과 수입의 단순한 구분만으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목재가 어떤 숲에서 왔고, 한국의 기후와 생활양식 속에서 얼마나 오래 쓰일 수 있으며, 그 사용이 다시 숲의 회복으로 이어지는지입니다.
기후위기는 어느 한 나라가 탄소를 덜 배출하고 나무를 더 심는다고 끝나는 문제가 아닙니다. 아마존에서는 숲을 태워 목초지를 만들고, 그 고기는 국경을 넘어 소비됩니다. 숲을 지키자는 말과 숲을 태우는 소비가 같은 시대에 공존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공유지의 비극입니다. 대기는 모두의 것이지만, 그 책임은 쉽게 흩어집니다. 숲은 각국의 영토 안에 있지만, 그 숲이 저장하거나 내뿜는 탄소는 국경을 넘어섭니다.
그렇다면 해법도 국경 안에서만 찾을 수는 없습니다. 이 점에서 최근 산림청이 유엔산림포럼과 함께 ‘지속가능한 산림경영 기반 목재 생산 및 활용’을 주제로 글로벌 웨비나를 열고, 목재의 가치를 세계적으로 확산시키기 위한 ‘세계 지속가능한 목재의 날’ 공식 지정을 국제사회에 제안한 일은 의미가 있습니다. 이것은 국산 목재를 더 쓰자는 좁은 주장이 아닙니다. 목재의 생산과 소비, 재사용과 재조림을 국제적 약속의 언어로 만들자는 제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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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목일이 한 나라의 민둥산을 푸르게 만든 기억이라면, 세계 지속가능한 목재의 날은 국경을 넘어 숲의 순환을 함께 책임지자는 제안에 가깝습니다. 나무를 심는 일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그러나 심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숲을 건강하게 가꾸고, 산불에 강한 구조로 바꾸고, 지속가능하게 생산된 목재를 오래 쓰고, 다시 심는 체계가 필요합니다. 기후위기 시대의 자연 기반 해법은 묘목 한 그루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숲의 생애 전체를 어떻게 순환시킬 것인가에서 시작됩니다.
식목일은 2006년 이후 공휴일에서 제외되었습니다. 빨간 날이 아니게 되면서 사람들의 기억에서도 조금씩 멀어졌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식목일은 지금 더 중요해졌습니다. 벚꽃은 일찍 피고, 송홧가루는 빨리 날리고, 산불은 커지고, 숲은 늙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목재를 쓰고, 종이를 쓰고, 숲이 내어준 자원 위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제 식목일은 단순히 나무를 심자는 구호에 머물 수 없습니다.
민둥산의 시대에는 나무를 심는 일이 시대의 과제였습니다. 푸른 산의 시대에는 숲을 건강하게 순환시키는 일이 다음 과제입니다.
20여 분이 흘렀습니다. 송홧가루에 놀라 흩어졌던 등산객들은 어느새 보이지 않았습니다. 햇살은 여전히 뜨거웠지만, 그늘진 정자 안으로는 바람이 들락거리고 있었습니다. 나무로 만든 정자는 한낮의 볕 아래에서도 쉽게 달아오르지 않았습니다. 숲에서 베어져 나온 나무가, 이곳에서 누군가의 쉼터가 되어 있었습니다.
식목일이 이제 물어야 할 것도 그 장면 속에 있습니다. 우리는 나무를 심는 데서 멈출 것인지, 아니면 숲이 내어준 것을 슬기롭게 쓰고, 다시 숲으로 돌려보내는 데까지 책임질 것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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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켜고, 깎고, 다듬는 건 익숙한데 글은 쓸 때마다 골치 아픈 우드코디BJ입니다.
그래도 나무를 좋아하고, 목재를 좋아하실 여러분과 소통하고 싶어 오늘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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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목재소는 현재 김포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꼭 나무를 찾으러 오시는 것이 아니더라도 괜찮습니다.
언제든지 편하게 방문해 주시면, 저희가 성심껏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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