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우드코디 BJ입니다.
지난 뉴스레터에서 소개드렸던 삼나무 오브제 작업,
이번에는 그 이야기를 조금 다른 시선에서 풀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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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여름, 유난히 공기가 가라앉아 있던 날이었습니다. 밖에 나서도 더위가 확 밀려오지는 않았고, 대신 공기가 천천히 몸에 달라붙는 오후였습니다.
지인의 소개로 치과 원장 한 분이 회사로 찾아왔습니다. 진료실이나 대기 공간에 두었을 때, 환자들의 긴장이 조금 느슨해지는 물건을 만들고 싶다고 했습니다.
재작년 치과 치료를 받았던 기억이 불쑥 떠올랐습니다. 진료 의자에 앉아 있는 내내, 치과 기구가 내는 날카로운 소리와 입안에서 느껴지는 통증 때문에 두 손을 꽉 쥐곤 했습니다. 손바닥에 땀이 배고, 팔걸이를 움켜쥔 손가락 끝이 저리도록 하얗게 변하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런 종류의 긴장이 조금이라도 풀렸으면 좋겠다는 의미를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아직 어떤 형태가 될지는 정해지지 않았고, 나무에 대해서도 막연한 호감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다만 직접 둘러보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말이 먼저였습니다.
함께 공간을 돌며 전시된 목재 작업물을 하나씩 살폈습니다. 말수가 많지 않던 원장님은 캐나다 작가 브렌트 콤버의 작품 앞에서 잠시 멈췄습니다. 한 조각을 가리키며 조용히 물었습니다. '이건 어떤 나무인가요?'
북미 지역에서 많이 산출되는 웨스턴 시더 수종이라고 답하자, 고개를 한 번 더 끄덕였습니다. 이 나무가 마음에 든다고 했습니다. 그 순간, 제재부에서 웨스턴 시더를 켤 때 나던 특유의 향과 판재의 결이 떠올랐습니다. 그런 구구절절한 설명을 굳이 이 자리에서 덧붙일 필요는 없을 것 같아 그저 잠자코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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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나다 목공예 작가 브렌트컴버의 작품 (사진출처 : 유림목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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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게도 당장 작업에 투입할 수 있는 웨스턴 시더 원목은 우리에게 없었습니다. 한때 건물 외벽 사이딩재로 자주 쓰였지만, 유행이 바뀌고 질 좋은 웨스턴 시더 수급이 점점 어려워지면서 들여오지 않게 된 지 오래였습니다.
대신 야적장 한쪽에 같은 삼나무과에 속하는 저패니즈 시더(Japanese Cedar) 원목이 남아 있었습니다. 결이나 색이 완전히 같다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삼나무류가 풍기는 특유의 분위기는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저패니즈 시더로 만든 샘플을 보여드렸습니다.
혹시나 저패니즈 시더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쩌나 생각하던 차에, 굳어 있던 원장님 표정이 스르르 풀리는 듯 보였습니다. 그 순간, 아까 원목 야적장에서 느꼈던 작은 불안이 비로소 가라앉았습니다. 십수 년간 목재를 다루며 가장 보고 싶은 표정이기도 합니다.
같은 수종으로 똑같은 목제품을 만들어도 색감과 결 문양이 전부 다릅니다. 이리저리 물결치는 천연대리석의 문양처럼, 나무가 갖는 물성도 본디 그렇습니다. 어떤 고객은 좋아하지만, 어떤 고객은 아쉬워합니다. 그 차이를 메울 방법은 없습니다. 다만 나무가 가진 고유의 특질이 고객의 마음에 닿기를 바랄 뿐입니다.
삼나무를 고른 고객들의 한줄평은 대개 이렇습니다. 향은 은근하고, 표면은 부드럽지만 과하게 눈에 띄지 않습니다. 만드는 입장에서도 아주 단단한 수종은 아니라 생산이 까다롭지 않고, 비바람에 강해 외장재로도 많이 쓰이는 나무입니다.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원장님은 원목 하나로 몇 개의 오브제를 만들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주문할 품목과 규격, 수량이 대략 윤곽이 그려졌기에, 무엇보다 우선 원목을 정확히 검척해야 했습니다. 길이와 지름을 재고, 그 안에서 가능한 주문품 범위를 가늠해 보자는 쪽으로 대화가 흘렀습니다.
결국 이번 주문건은 치과라는 공간에 놓일, ‘긴장이 느슨해지는’ 가구와 오브제를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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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척하기 위해 세 본(本)의 삼나무 원목을 늘어놓았다 (사진출처 : 유림목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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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야적장에 쌓여 있던 세 그루의 삼나무를 지게차로 옮겨 가지런히 늘어놓았습니다. 길이는 약 4미터 남짓, 지름은 대략 600밀리미터에서 650밀리미터 정도였습니다.
원목의 뿌리 쪽 횡단면을 원구, 반대쪽을 말구라고 부릅니다. 보통 원구 지름이 말구보다 굵은 편입니다. 머릿속으로 수령이 지긋이 자란 큰 나무를 떠올려 보면 단번에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세 그루 중 하나는 벌목된 나무의 몸통 중간쯤에서 나온 원목인지, 원구와 말구의 차이가 크지 않았습니다. 큰 각재로 켜내기에 적합한 형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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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F틀을 말구에 대보며 제재할 최대각을 가늠해 본다 (사진출처 : 유림목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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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재를 앞두고 치수를 고민했습니다. 둥근 원목을 어느 정도 크기로 켜내야 수율이 좋을지 판단이 필요했습니다. 330밀리미터, 350밀리미터, 400밀리미터 크기의 MDF 틀을 만들어 번갈아 대보며 분필로 선을 그었습니다.
원목의 가장 홀쭉한 부분을 기준으로 삼아야 최대한 큰 규격의 각재를 얻을 수 있습니다. 원구에서 말구까지 톱날을 길게 켰을 때 온전히 남길 수 있는 최대치는 400밀리미터였습니다. 그렇게 400밀리미터 정사각형으로 제재하고, 길이는 1000밀리미터로 맞추기로 했습니다. 원목 하나에서 네 개의 덩어리가 나왔습니다.
원목을 모두 같은 방식으로 켜지는 않았습니다. 일부는 큰 각재로, 일부는 판재로 제재했습니다. 오브제뿐 아니라 대기실에 놓일 가구도 함께 주문받았기 때문입니다. 가구는 짜맞춤 기법으로 제작하기로 했습니다.
제재 작업을 마치고 필요한 규격의 목재를 확보했습니다. 계산이 맞아떨어졌다는 성취감보다는, 나무를 알차게 썼다는 뿌듯함이 더 크게 남았습니다. 지금도 남겨진 나무토막을 보면 아깝다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쓸모를 찾지 못하면 결국 썩으며 품고 있던 탄소를 다시 대기로 돌려보낼 테니까요.
길고 큰 각재는 다시 대차 제재기에 올려 1000밀리미터 단위로 길이를 잘랐습니다. 원목의 둥근 형태가 사라지고 표면에 직선이 생기면서, 제작할 목물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났습니다. 이제 원목은 단순한 재료가 아니라, 곧 쓰임을 앞둔 물건처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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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차에 올려 기장 절단 작업 중인 기다란 대각(大角)재 (사진출처 : 유림목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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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은 여름 내내 이어졌습니다. 공기가 눅눅해 나무에는 수분이 오래 머물렀습니다. 그래서 바로 다음 공정으로 넘기기보다는, 잠시 숨을 고르게 두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습니다. 햇볕이 직접 들지 않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목재를 옮겨 두고, 건조되는 상태를 천천히 지켜봤습니다.
억수같이 소나기가 쏟아져 목재가 흠뻑 젖는 날도 있었습니다. 말리기 위해 야적장에 널어 둔 삼나무 위로 비가 쏟아지면, 습기를 잃어가던 표면은 순식간에 짙은 갈색으로 변합니다. 사람 눈에는 단순히 나무가 젖는 풍경일 뿐이지만, 그 순간 목재 안팎에서는 보이지 않는 긴장이 서서히 쌓이기 시작합니다.
겉은 빗물을 머금어 미세하게 부풀고, 속은 여전히 마르는 중입니다. 늘어나려는 겉과 버티는 속 사이에서 응력이 생기고, 그 미묘한 균형이 목재의 품질을 좌우합니다. 빠른 건조에 끌려가던 표면이 비를 맞으며 잠시 힘을 풀었다가 다시 조여들고, 그 반복이 갈라짐을 어느 정도 완화시켜 줍니다.
제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목재는 비가 와도 매번 서둘러 치우지 않습니다. 표면이 지나치게 빠르게 마르면서 생길 수 있는 할렬을 줄이기 위해서입니다.
빗물이 표면에 얇은 수막을 형성하면서, 속과 겉의 건조 속도를 어느 정도 맞춰줍니다. 그 과정에서 내부 수분이 비교적 균일하게 이동하게 됩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 갈라짐이 줄어드는 경우도 있고, 건조 상태도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됩니다.
비가 그치고 해가 나면 표면은 다시 빠르게 마릅니다. 젖고 마르기를 반복하면서 나무는 팽창과 수축을 오갑니다. 우리는 그 과정에서 강한 햇볕이나 과도한 바람에 직접 노출되지 않도록, 목재를 옮기고 가려주며 관리합니다.
나무를 다루는 일은 톱과 끌을 사용하는 시간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숙성과 건조의 시간이 더 길게 이어집니다. 그 시간을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결국 결과를 좌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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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구 방향을 아래로 세워 건조 중인 제재목 판재들 (사진출처 : 유림목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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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각재는 가공부로 옮겨 샌딩하며 다듬고, 판재는 재단하고 장부를 내어 맞추며 가구로 제작했습니다. 이번 작업은 마감 도장을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목공에 관심이 많은 원장님께서 마감은 직접 해보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꼭 당부드렸습니다. 건조한 실내로 들어간 나무는 수분을 내보내며 갈라지기 쉽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되도록 이른 시일 내에 도장 작업을 마쳐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꼼꼼한 마감은 나무의 급격한 호흡을 조절해 변형을 막아주는 일종의 옷과도 같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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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대패 작업 중인 삼나무 가구부재 (사진출처 : 유림목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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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이 지나 원장님이 다시 찾아왔습니다. 완성된 오브제와 가구를 한동안 바라보시더니, 생각보다 더 좋다는 반응을 보이셨습니다. 그제야 작업 내내 남아 있던 긴장이 조금 풀렸습니다.
이렇게 주문품을 완성해 고객에게 전달할 때면 늘 같은 질문이 떠오릅니다. 내가 보고 만든 이 결과물이, 그 사람이 마음속에 그려두었던 장면과 크게 어긋나 있지는 않을지.
요즘은 유난히 자연 재료에 마음이 가는 사람들이 많아 보입니다. 자연주의 삶을 표방하는 ‘킨포크 스타일’이 인기를 끄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입니다. 아마도 균질하고 완벽한 것들에 둘러싸인 채 긴장을 늦추지 못하는 삶 속에서, 잠시라도 느슨해질 수 있는 감각을 찾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런데 막상 나무 앞에 서면 갈라짐을 흠으로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연을 원하면서도, 자연이 가진 불완전함은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화학섬유와 달리 순면이나 울 제품은 섬세하게 다뤄야 한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습니다. 면 셔츠의 구김이나 울 스웨터의 수축을 결점이라 부르지 않습니다. 다만 나무에 대해서만, 그 사실을 때때로 잊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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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대각재는 화병 좌대로 사용됐다 (사진출처 : 유림목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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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변화는 스스로 지나온 시간을 드러내는 흔적처럼 느껴집니다. 이 삼나무 역시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표정이 달라질 것입니다. 공간 안에서 자리를 잡고, 온도와 습도의 변화에 따라 조금씩 늘어나고 줄어들기를 반복하며, 조용히 제 역할을 해 나갈 것입니다.
치과 치료를 기다리며 두 손을 꽉 쥐고 있는 누군가의 긴장된 주먹이, 이 나무와 함께하는 동안 조금이라도 느슨해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삼나무들은 충분한 이유를 갖게 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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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 곳곳에 세팅된 삼나무 원목 가구 (사진출처 : 유림목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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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켜고, 깎고, 다듬는 건 익숙한데 글은 쓸 때마다 골치 아픈 우드코디BJ입니다.
그래도 나무를 좋아하고, 목재를 좋아하실 여러분과 소통하고 싶어 오늘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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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목재소는 현재 김포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꼭 나무를 찾으러 오시는 것이 아니더라도 괜찮습니다.
언제든지 편하게 방문해 주시면, 저희가 성심껏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의 방문을 언제나 환영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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