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부터 휴대폰 문자 도착 알람이 요란하게 울립니다. 김포 대곶면 공장지대에서 큰 화재가 발생했다는 내용입니다.
'대곶면이면 우리 회사와 그리 먼 곳은 아닌데.'
급한 마음에 평소보다 서둘러 출근길에 나섭니다. 차창 밖 저 멀리 거대한 검은 연기가 하늘로 치솟고 있습니다. 회사와는 몇 킬로 떨어진 곳인 듯 보이네요. 투둑투둑 장맛비가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다행이라 생각하며 회사에 도착하니 사무동 지붕 너머로도 화재 연기가 보입니다. 꽤나 큰 불이 난 게 틀림없습니다.
아침 회의를 마치고 인터넷 뉴스 기사를 찾아봅니다. 자동차 부품 보관 창고에서 불이 나기 시작해 주변 창고와 인근 공장까지 태웠다고 합니다. 그중에는 식용유를 5만 4천 리터나 보관된 창고와 목재가구를 가공하는 공장도 있었다고 해요. 해당 공장지대 건물 대다수는 샌드위치 패널 구조라 불길이 빠르게 번졌다는 내용이 대부분입니다.
흔히 '조립식 판넬'이라고도 부르는 샌드위치 패널은 얇은 철판 사이에 석유화학 제품인 스티로폼 또는 우레탄폼을 넣은 건축 자재입니다. 시공이 간단해 공사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고 단열성능도 좋아 인기가 높습니다. 특히 가격이 저렴해 공사비가 적게 듭니다. 그런데 불이 붙으면 순식간에 커지고 동시에 시커먼 연기와 유독가스를 내뿜어 대형 인명사고의 주범이 되기도 합니다. 2022년 제2경인고속도로 방음터널 화재 사고도 석유화학 제품인 플라스틱 자재가 '불쏘시개' 역할을 해 수십 명이 안타까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만약 세상에 플라스틱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뜨거운 여름에 시원한 생수 한 통 저렴하게 사 마실 수 없을 겁니다. 마트에서 장이라도 볼라치면 무거운 유리용기로 꽉 찬 장가방을 낑낑대며 끌어야 할지도 모르죠. 자칫 실수해 떨어뜨리기라도 하면 뒷정리하다 손을 베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인명사고로 이어지지는 않겠지만, 되도록 쓰지 말아야 할 곳에 가격과 편의만을 이유로 쓴다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특히 샌드위치 패널은 화재 시 바깥쪽 철판이 달궈지면서 내부 스티로폼에 불이 붙는데, 물을 쏴도 철판에 막히고, 불에 타 녹아내리는 스티로폼에서는 계속 인체에 치명적인 유독가스가 뿜어져 나옵니다.
목재 회사 다니는 입장에서 '목재'라서 당연히 불이 났다는 식의 기사를 보면 기분이 좀 언짢을 때가 많습니다. 물론 세상 모든 물질이 그렇듯 목재도 불에 탑니다. 그런데 문제는 불이 붙었을 때 유해 가스를 내뿜는 냐 아니냐입니다. 커튼과 카펫뿐만 아니라 각종 필름지, 소파나 매트리스 안에 넣는 스티로폼 충전재 등의 석유화학 제품은 화재 시 유독가스가 발생합니다. 대형 화재 사망 원인 중 연기와 유독가스에 의한 질식사가 70%로 가장 비중이 높습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천연 원목을 깎고 켜서 만든 '목재'와 그 과정에서 나온 부산물을 합성수지와 섞어 만든 '목질 자재'는 화재 시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합판이나 파티클보드, MDF(톱밥과 접착제를 섞어 압착한 판재) 같은 '목질 자재'는 불에 타면 포름알데히드, 벤젠, 다이옥신 등 1급 발암물질과 대기오염물질을 배출하기 때문에 지정 소각장이 아닌 곳에서 태우면 안 되는 폐기물입니다.
얼마 전에도 어느 배터리 공장에서 불이 나 많은 사상자를 낸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습니다. 배터리를 생산하는 화학공장은 특성상 일반적인 화재와 달리 불길을 잡기 어렵다고 합니다. 그런데 불길이 시작된 공장동이 하필 샌드위치 패널로 지어져 화재 진압과 인명 구조에 더더욱 난항을 겪은 사실이 추가로 알려졌습니다. 지어진 지 40년이 훌쩍 넘은 우리 공장 건물들은 대부분 조적식(벽돌) 구조로 돼 있습니다. 그런데 몇 년 전 대수선 공사를 하며 군데군데 샌드위치 패널이 쓰였죠. 아무래도 오늘은 그 주변을 한번 둘러보고 퇴근해야 마음이 편할 듯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