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인테리어 업체 담당자들과 목재 상담을 마친 뒤였다. 남은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한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내게 물었다.
"나무는 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배출한다고 학교에서 배우잖아요. 그런데 나무는 왜 탄소를 들이마시는 거죠?"
나무가 탄소를 흡수한다는 말은 익숙하다. 너무 익숙해 더는 물을 필요조차 없어 보이는 문장이다. 그런데 왜 흡수하느냐고 묻자 이야기가 조금 달라졌다.
나는 짧게 답했다. 빽빽한 숲에서 햇빛을 받으려면 나무는 잎이 달린 수관을 높이 올려야 한다. 줄기는 그 무게를 받치고 뿌리에서 끌어올린 물을 운반하면서 해마다 나이테를 더해 굵어진다. 줄기를 이루는 물질에는 탄소가 들어 있다. 내가 매일 다루는 목재도 마찬가지다.
나무가 인간에게 산소를 선물하려고 탄소를 마시는 것은 아니다. 제 몸을 만들고 살아가려고 공기 중 이산화탄소를 받아들이며, 그 과정에서 산소를 내보낸다.
▲ 주문이 들어온 물량을 생산하기 위해 해당 수종 판재들을 꺼내어 옮기는 기술자들.
(사진출처 : 유림목재)
탄소가 나무가 되는 동안
나무는 햇빛 에너지로 공기 중 이산화탄소와 뿌리에서 끌어올린 물을 합쳐 당을 만든다. 그중 일부는 생명 활동에 쓰이고 일부는 줄기의 새 나이테를 만드는 데 쓰인다. 나무는 이 당으로 셀룰로오스와 리그닌 같은 물질을 만들어 목재의 세포벽을 이룬다.
수분을 뺀 목재는 건조중량의 절반가량이 탄소다. 말하자면 건조 목재 1톤에는 약 0.5톤의 탄소가 들어 있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로 환산하면 약 1.8톤에 해당하는 양이다. 건조중량에서 탄소가 차지하는 비율은 대체로 비슷하므로 같은 부피라면 비중이 높은 목재일수록 더 많은 탄소를 품는다.
제재소에서 일하다 보면 그 사실을 손으로 확인할 때가 있다. 드물게 크윌라나 이페처럼 비중이 높고 단단한 원목을 켤 때다. 다만 그 속을 들여다보기는 쉽지 않다. 원목 한 통을 켜는 동안에도 몇 차례씩 제재기를 멈추고 금세 무뎌진 톱날을 새로 연마한 톱날로 갈아 끼워야 한다.
그렇게 드러난 단면을 보고 있으면 공기에서 온 탄소가 이처럼 단단한 목질의 일부가 되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그렇다고 나무가 받아들인 탄소가 영원히 그 안에 머물지는 않는다. 수명을 다한 나무가 쓰러져 썩을 때면 목질 성분이 분해되면서 탄소가 서서히 대기로 돌아간다.
목재로 만들었더라도 불에 태우면 목질 속 탄소가 빠르게 이산화탄소가 되어 대기로 돌아간다. 반대로 집이나 가구 같은 목제품으로 오래 사용하면 탄소는 목재 안에 더 오래 머문다.
얼마 전 이런 사실을 다시 떠올리게 한 사건이 있었다.
▲ 제재 작업 중 제재기 가동을 중지하고 무뎌진 톱날을 교체하는 모습. (사진출처 : 유림목재)
네팔이 내민 기후변화 청구서
8월 26일 오전 8시 37분, 네팔과 중국 티베트 국경 부근에서 지진 신호가 잡혔다. 그러나 신호를 다시 분석해 보니 단층이 끊어지며 생긴 지진이 아니었다. 네팔 랑탕 국립공원 안 랑탕 리룽 북쪽 사면에서 거대한 암반과 빙하가 무너져 내리며 생긴 신호였다.
암석과 얼음이 계곡의 물과 퇴적물을 휩쓸면서 거대한 토석류와 홍수가 됐다. 산이 무너진 지 불과 7분 뒤 홍수가 하류의 라수와가디 국경 통상구를 덮쳤다.
이번 붕괴가 온난화 때문에 일어났다고 단정하기에는 이르다. 다만 분석 결과 이 지역은 수십 년 동안 뚜렷하게 따뜻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천 명이 넘는 사람이 목숨을 잃었고 실종자는 그보다 많았다. 시시르 카날 네팔 외무장관은 이 재난을 ‘히말라야 쓰나미’라고 규정했다. 카날 장관은 네팔이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작지만, 정작 자신들이 만들지 않은 지구적 위기의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말했다. 역사적으로 온실가스를 더 많이 배출해온 경제권도 공동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네팔 정부는 유엔 손실과 피해 대응기금에도 보상을 요청했다.
그렇다면 지금 대기 중에 쌓여 지구의 온도를 끌어올리는 그 많은 탄소는 어디에서 왔을까.
숲에서 석탄으로
나무는 집과 배, 수레와 가구를 만드는 재료였다. 장작과 목탄이 되어 열을 내는 연료이기도 했다. 존 펄린은 『숲과 문명』에서 목재를 축으로 문명의 역사를 다시 읽는다. 도시와 궁전, 배와 전쟁뿐 아니라 금속과 유리처럼 나무와 무관해 보이는 물건 뒤에도 숲이 있었다. 그것을 만드는 데 연료로 쓴 나무가 있었기 때문이다.
인구와 산업이 커질수록 나무를 소비하는 속도는 숲이 다시 자라는 속도를 앞질렀다. 산업혁명기에는 코크스를 이용한 제철이 확산됐다. 연료의 중심도 숲에서 석탄으로 옮겨갔다. 다시 자라는 나무 대신 수천만 년에서 수억 년 동안 땅속에 갇혀 있던 탄소를 꺼내 태우는 시대가 열렸다.
목재와 석탄, 석유 속 탄소의 출발점은 같다. 모두 광합성을 하는 생물이 이산화탄소에서 받아들인 탄소에서 비롯됐다. 나무의 탄소는 지표와 대기 사이를 비교적 짧은 주기로 오간다. 반면 석탄과 석유의 탄소는 인간의 역사보다 훨씬 긴 시간 동안 지표의 탄소 순환에서 격리돼 있었다. 인간은 그 오랜 탄소를 불과 몇백 년 만에 꺼내 태웠다.
탄소라는 원소 자체가 문제는 아니었다. 인간이 탄소를 어디에서 꺼내 얼마나 많이, 얼마나 빠르게 대기로 옮겼는지가 문제였다.
9월 2일 유엔환경계획(UNEP)은 장기적인 온난화 수준이 1.5도를 초과하는 일이 이제 불가피하며 몇 년 안에 찾아올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배출 감축과 함께 대기 중 이산화탄소 제거도 필요해졌지만 제거가 감축을 대신할 수는 없다. 보고서는 책임이 큰 나라일수록 먼저 행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역시 화석연료를 대량으로 사용하며 성장한 산업국 중 하나다.
여기까지 오면 답은 간단해 보인다. 나무를 더 심으면 되지 않는가.
2023년 《네이처》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전 세계 산림 생태계의 추가 탄소저장 잠재량 가운데 61퍼센트는 이미 숲이 있는 지역의 훼손된 산림이 회복하고 성숙할 때 얻을 수 있다. 연구진은 한 가지 수종을 대규모로 심는 방식보다 다양한 생물종으로 이루어진 숲을 보전하고 회복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많은 탄소를 저장하면서 생물다양성과 수자원, 토양을 함께 지탱하는 자연림과 오래된 숲은 우선 지켜야 한다. 훼손되어 회복이 필요한 숲은 사정이 다르다. 나무를 심어야 하는 곳도 있지만 더 건드리지 않고 스스로 회복하도록 두는 편이 나은 곳도 있다.
목재를 얻으려고 관리하는 생산림은 역할이 또 다르다. 앞으로도 집과 가구, 종이를 만들려면 나무가 필요하다. 이런 숲에서는 계획에 따라 수확하고 다음 숲을 갱신하면서 토양과 물을 훼손하지 않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수확한 나무를 얼마나 오래 사용할지도 중요하다. 건축물의 구조체에 목재를 더 많이 쓰려는 움직임도 같은 맥락이다. 철강과 콘크리트 같은 탄소집약적 재료를 일부 대체하고, 건물이 서 있는 동안 탄소를 목재 안에 머물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 기술자가 젠노꼬로 딸통(대형 원목)을 길이 방향으로 가르고 있다. (사진출처 : 유림목재)
나는 제재소에서 18년째 일하고 있다.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만 해도 산지의 원목이 벌크선에 실려 국내에 대량으로 들어오곤 했다. 지금은 그런 광경을 보기 어렵다. 지름이 작은 원목이 간혹 컨테이너로 들어오지만 그마저 드물다. 대신 현지에서 규격대로 제재·건조한 목재나 데크 같은 가공완제품은 대부분 컨테이너에 실려 들어온다. 원목 수입량은 줄었고 문을 닫는 국내 제재소는 늘었다.
같은 기간 기후위기는 점점 현실적인 문제가 됐다. 폭염과 폭우, 산불이 뉴스를 채우는 일이 잦아졌다. 이런 변화를 겪으면서 내가 오래 해온 일도 전과는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원목을 켜고 말려 사람이 오래 쓸 수 있는 목재를 생산하는 일은 나무가 공기에서 가져온 탄소를 쓸모 있는 목제품으로 우리 일상에 더 오래 머물게 하는 일이기도 했다. 어느 날부터인가 내가 하는 일에 남모를 자부심이 들었다. 거창하게 들릴지 몰라도 오래 쓰이는 목재를 만드는 일은 지구와 사람을 위한 일이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물론 목재를 얼마나 오래 쓸지는 제재소 안에서만 결정되지 않는다. 그 목재가 쓰일 공간을 설계하고 시공하는 사람들, 가구를 만드는 제작자들, 관리하고 고쳐 쓰는 이용자들의 손을 거치는 동안 탄소가 목재 안에 머무는 시간도 달라진다.
▲ 유림목재 중앙홀에 전시된 부빙가 원목. (사진출처: 유림목재)
가구회사에서 일하던 나는 2009년 제재소로 이직했다. 그 뒤 2015년부터 2025년까지는 관측 사상 가장 더운 11년이었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이미 형성된 엘니뇨가 앞으로 더욱 강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앞서 5월 중장기 전망의 책임 연구자는 엘니뇨의 영향으로 2027년이 새로운 최고기온 기록의 해가 될 가능성도 커진다고 설명했다.
디자이너가 ‘나무는 왜 탄소를 들이마시느냐’고 물은 것은 나무의 대사 작용에 관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 질문을 따라가다 보니 나무가 받아들인 탄소의 행방은 숲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질문은 다시 인간에게 돌아온다. 나무가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제 몸에 쌓아온 탄소를 우리는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얼마나 오래 남겨둘 것인가.